우지 풍미를 강조한 프리미엄 라면 ‘삼양1963’ 패키지 모습. (사진=내미림 기자)
한국 라면을 상징하는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대부분 ‘매운맛’입니다. 불닭볶음면을 비롯한 매운 라면이 전세계를 휩쓴지 오래고 해외 소비자들은 K-라면을 곧 ‘핫 스파이시 푸드’로 인식했기 때문이겠죠. 삼양식품이 이달 초 36년 만에 우지(소 기름)로 만든 신제품 '삼양1963'을 출시했습니다. 해외무대에서의 두각을 통해 부활의 상징이 된 삼양식품은 ‘라면=매운맛’이란 공식을 깨고 우지(牛脂)’를 전면에 내세워 ‘라면의 본질=기름과 국물’이란 도전에 나선 것인데요. 우지는 소기름으로 라면 초기 시절 풍미를 책임졌던 소재지만 건강 트렌드 속에서 다소 잊혀졌던 재료이기도 합니다.
삼양은 여기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기름층에서 올라오는 깊은 맛, 그 기름이 국물을 감싸며 내는 묵직한 존재감을 되찾겠다는 전략입니다. 직접 조리해 봤습니다. 라면이 익어가는 시간 동안 뚜껑을 살짝 열었을때 특유의 고기 육향이 또렷하게 올라옵니다. 자극적인 조미 향 대신, 마치 집에서 푹 끓인 우거지국이나 소고기국 냄새를 떠올리게 하는 구수하고 진한 기름 향이 공기를 타고 퍼집니다. 면을 들어 올렸을 때에도 표면에 반짝이는 기름막이 확연하게 보입니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입 안 전체를 기름이 한 겹 감싸며 고기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진득하게 남더군요. 이어 칼칼한 매운맛이 지나가면서 느끼함을 잡아줬습니다. 짧게 치고 빠지는 ‘화끈함’이 아니라 기름과 매운맛이 공존하는 묵직한 한 방에 가까웠죠.
얼큰한 국물과 두툼한 면발이 특징인 '삼양 1963'. (사진=내미림 기자)
건더기로 들어간 튀김 후레이크와 양파칩이 바삭하게 씹히며 단조로울 수 있는 질감을 보완하고 맛이 무거워질 수 있는 구간에서 입 안에 환기 구멍을 만들어줍니다. 불닭과 비교하면 매운맛은 강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기준으로 보면 칼칼하게 지나가는 정도로 매운것을 잘 못먹는 소비자도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다만 육향이 또렷한 만큼 첫 숟가락부터 호불호는 확실히 갈릴 수 있습니다. “향 너무 강해”라는 소비자라면 멀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라면은 기름맛이지”라고 믿는 소비자라면 ‘취향 직격’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면발은 삼양 특유의 쫄깃함을 유지하고 있어 국물을 끌어올리는 힘이 강하고 라면을 다 먹어갈 즈음이면 밥 생각이 강하게 들 수 밖에 없는 결말이 찾아옵니다. 남은 국물에 밥을 비비면 고기 기름의 풍미가 밥알에 스며들어 양이 늘어나는 기쁨까지 안겨줍니다. 기자 또한 ‘국물은 남기지 말자’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했습니다.
소비자 반응도 비슷한 결을 보입니다. 지인들에 물어보니 “옛날 라면의 정수가 돌아왔다”, “불 맛 말고 이런 라면 기다렸다”는 반응에서부터 “기름층이 다소 부담스럽다”, “조금 더 후추향이나 청량감이 있었으면” 같은 의견도 있었죠. 즉, 자극적 조미가 아닌 ‘풍미 중심 라면’을 원하는 소비자층에게 분명히 닿는 제품이라는 의미입니다.
삼양은 우지라면을 통해 ‘불닭 이후’ 새로운 서사를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매운맛만으로 세계 시장을 설득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한국식 정통 국물 라면의 깊이를 세계에 다시 소개하겠다는 전략입니다. 특히 육향 선호가 뚜렷한 북미·유럽 시장에서는 K-라면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업계의 전망도 나옵니다. 우지라면으로 다시 한번 불닭 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