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의 사망사고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시공능력평가 기준 상위 10대 건설사에서만 총 26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올해 들어서도 중대재해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포스코이앤씨의 사망사고에 대해 "법률적으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며 강도 높은 질타를 쏟아냈다. 건설업계 전반이 초긴장 상태에 빠진 가운데서도 유독 사망사고 수치가 낮은 삼성물산의 안전관리 체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등 건설현장 안전 문제에 대해 고강도 대책을 지적하자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 등이 지난 29일 인천 송도 본사에서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이앤씨)

■ 대통령 "미필적 고의"…정면 비판에 건설업계 '비상'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의 현장 사망사고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은 죽음을 용인하는 일"이라며 "징벌적 배상과 건설 면허 취소, 고액 과징금 등 강력한 제재를 검토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

이어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 기업은 여러 차례 공시하게 해 주가가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사실상 기업 경영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강경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 발언은 지난 28일 경남 의령군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포스코이앤씨 소속 협력업체 노동자가 천공기에 끼여 숨진 사고 직후 나온 것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이미 지난 1월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 4월 광명 신안산선 붕괴 사고, 6월 대구 주상복합 공사 중 추락사 등 올해만 4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다음 날 포스코이앤씨는 모든 현장의 작업을 중단하고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 지난해 사망자 26명…올해도 '줄줄이' 사고 이어져

건설현장의 인명 피해는 올해만의 문제도, 한 건설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업 사고 사망자는 7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사고 사망자 64명 대비 7명 늘었다. 부산 반얀트리 복합리조트 신축공사 화재로 6명, 안성 세종~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로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사망 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현대건설은 최근 서울 은평구와 동대문구 아파트 현장에서 낙하물 사고와 붕괴 사고로 각각 사망자가 발생했다. 파주 공사장에서도 근로자 사망사고가 보고됐다.

HDC현대산업개발도 울산 미포만 공사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사망했고, GS건설도 일부 신축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반적으로 복수의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이어지며 업계 전반에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2024년)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총 2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23명, 2023년 18명으로 줄어들던 추세가 1년 만에 다시 증가세로 전환된 것이다.

중재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인 2022년~2024년 대형 건설사별 사망자 수를 보면, 대우건설이 1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현대건설과 DL이앤씨가 각 9명, HDC현대산업개발 8명, 롯데건설 7명, GS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각각 6명, 현대엔지니어링이 5명, SK에코플랜트 4명,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1명으로 뒤를 이었다.

다만 이와 대조적으로 삼성물산은 단 1건에 불과해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망자가 완전히 발생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다른 안전관리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 인명사고 2년간 1건 삼성물산…언제든 쓸 수 있는 안전예산 250억

이처럼 대다수 건설사들이 사망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를 통틀어 국내외 전 현장에서 1건 이내의 사고만 기록했다. 안전관리 측면에서 구조적 차이를 만들어낸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삼성물산은 연평균 약 250억원의 '안전강화비'를 별도로 편성해 전 현장에 배분한다고 설명했다. 이 비용은 법정 안전관리비와는 별개로, 손익에 반영되지 않아 부담 없이 즉각적인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이 점이다.

모든 현장소장에게 예산 집행권을 전면 위임했고, 협력사에도 해당 비용을 100% 선지급해 초기부터 안전 확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조직 면에서도 삼성물산은 CSO(최고안전책임자) 주도의 독립적 안전전담 체계를 운영한다. 인사·예산·평가 권한이 모두 위임된 CSO 산하에는 7개 실무팀, 1개의 건설안전연구소, 상시 점검단이 배치돼 있다. 또 매주 '전사 안전경영위원회'를 통해 위험공종을 사전 점검한다. 2021년부터는 전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30만 건 이상의 작업중지권이 행사됐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지능형 CCTV를 활용한 상황실에서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사진=삼성물산)

설계 단계에서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DfS(Design for Safety) 체계도 전 현장에 도입했다. 협력사와 공유하는 'DfS 라이브러리'도 별도로 운영한다. 구체적으로 드론, AI 기반 알림 시스템, 지능형 CCTV, 점검 앱 등 스마트 기술도 다수 도입했다. 자체 개발한 'OHSMS(안전보건경영시스템)' 기반으로 PDCA(계획–실행–점검–개선) 사이클을 구축해 실시간 조치가 이뤄진다.

삼성물산은 외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전 현장의 98.7% 이상이 ISO45001 국제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협약을 맺고 드론·AI 기술 실증 및 확산을 진행 중이다.

■ 건설업계 "기본적 안전체계 마련…근본 원인은 복합적"

대한건설협회는 이번 대통령의 강경 메시지에 즉각 반응했다. 건설사 대표이사들이 직접 현장을 찾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 확대 등도 논의했다. 다만 여전히 중소건설사는 제도적 부담이 있는 것은 현실이라는 우려도 나타냈다.

서명덕 홍보팀장은 "건설업계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전 안전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며 "협회 차원에서도 각 시도회를 통해 지속적인 안전 유의사항을 전파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CEO 현장 방문,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 확대, 릴레이 캠페인 전개 등 대응책도 논의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대형 건설 현장은 기본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반복되는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단순히 안전관리를 잘한다고 사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근로자의 성향, 당일 컨디션 등 예측하기 어려운 요소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사와 달리 안전예산을 여유롭게 운용하기 어려운 중소 건설사들은 제도적 부담과 현실의 간극을 호소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이중·삼중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공감하지만, 실질적 인프라 확보는 아직 과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차인 2025년. 대통령의 강한 메시지와 반복되는 사망사고 속에서 숫자로 나타나는 차이는 결국 구조와 실행력의 차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사고는 안전 확보에 시간이 지체되거나 예산 확보가 어려운 탓"이라며 "삼성물산은 명확한 권한 위임과 실질적인 예산 집행, 예방 중심 설계와 기술 투자가 구조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현장 실천력이 다르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