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3500억달러(약 487조원) 투자와 1000억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를 조건으로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압박 속에 다급하게 체결된 이번 합의는 주요 수출 산업의 불확실성을 다소 완화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산업별로 극명한 유불리를 드러내며 향후 체질개선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 조선·방산, 美 진출 본격화… MRO·해군 군함 수주 기대
조선업계는 오랜만에 명확한 호재를 맞았다. 1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 협력 펀드는 선박 건조와 기자재, 유지·보수(MRO) 등 조선 생태계 전반에 걸쳐 미국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MASGA(조선업 부활 정책)와 맞물려,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수주 경쟁력도 확보될 수 있다.
방산 산업은 기본적으로 군·정부 수요를 기반으로 하며, 대미 수출 사례가 많지 않아 관세 적용 대상은 아니다. 다만 조선 펀드의 활용처 중 하나가 미 해군 군함 건조 협력 확대인 만큼,- 해양 방산 부문에는 간접적인 수혜가 예상된다.
■ 반도체·자동차, 15% 관세는 여전히 부담스러워
반도체 산업은 공급망 강화 측면에서는 기회를 얻었지만, 수익성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이 남았다. 현대차증권 분석에 따르면 관세가 실제 부과될 경우, 가격 저항을 피하기 위해 가격 인하가 불가피하며 이는 곧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 중 약 8%가 미국 시장에 해당된다.
자동차 업계는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IBK경제연구소는 15% 관세 적용 시 향후 12개월간 자동차 수출이 약 9% 감소해 국내 GDP에도 최대 1% 안팎의 충격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7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철강, 고율 관세 ‘고착’…맨몸 수출 현실화
철강과 비철금속 산업은 이번 협상의 대표적 피해 업종이다. 미국은 철강·구리·알루미늄 등에 기존 50% 고율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2018년부터 적용돼온 무관세 수출 쿼터(연 263만t)도 폐지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미국 내 공장 설립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2029년 이후 본격 가동될 예정으로 당분간은 ‘맨몸 수출’이 불가피하다. 실제 5월 기준 대미 철강 수출은 전년 대비 16.3% 감소했고, 포스코·동국제강·세아베스틸 등도 2분기 실적이 25~50%가량 감소했다.
구리의 경우 제품에는 관세가 부과되지만 원광은 면제돼 LS전선, 현대차 등 대규모 수요 기업들의 제조비용이 증가할 가능성도 지적된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향후 3년 반에 걸쳐 1000억 달러 규모의 LNG 및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는 장기적 물량 확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고환율과 유가 상승 시 물가 불안과 무역수지 적자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어 ‘양날의 검’으로 평가된다.
■ 농업·축산업계 ‘불확실성’ 지속…압박 지속 가능성↑
쌀과 쇠고기 등 민감 품목은 이번 협상에서 개방이 유보됐지만, 미국의 압박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은 “식량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농민단체들은 ‘시한부 유예’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향후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농축산물 개방 요구가 재부상할 경우, 선제 대응과 피해 보전 전략 마련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은 단순한 수출 여건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무역정책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된 것은 긍정적이나 관세라는 변수 외에도 글로벌 공급망·기후 규제·정치 리스크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산업별 맞춤 전략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