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풀기는 끝났다. 내로라하는 프로들의 본선 등판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다. 필드에 들어선 증권사 신임 최고경영자(CEO)들의 새로운 플레이는 관중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사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 특유의 경영 스타일은 앞으로 증권업계 흐름을 얼마나 바꿔놓을까. 뷰어스는 올해 새롭게 취임한 주요 증권사 신임 CEO들의 비전과 경영스타일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 김성환 대표, IB·WM서 입증한 '골 결정력'
잠시 경기 주도권을 놓쳤다. 줄곧 리그에서 1,2위를 차지했던 한국투자증권도 지난해 국내외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인한 충격을 피해가진 못했다. 수십년 다져온 팀워크로 버티고는 있지만 한순간 삐끗하면 판세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최상위권의 경쟁은 더더욱 그렇다.
교체 타이밍. 감독은 경기 초반부터 만지작거리던 카드를 꺼냈다. 김성환 대표의 투입은 한국투자증권이 성장 가도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긴 흐름으로 팀을 이끄는 감독의 용병술을 감안할 때 단기적 리스크 관리에 치중하기보단 공격적인 태세로 시장을 점령하겠다는 전략이 더 짙게 묻어난다.
김 대표가 기업금융(IB)부문 업계 대표선수라는 건 업계 안팎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최초로 부동산 PF를 기초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도입한 것도, IB그룹장 취임 첫해 한국투자증권에 2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안긴 것도 바로 김 대표다.
그의 남다른 ‘골 결정력’이 재부각된 건 포지션 변경 이후다. 2017년 감독은 김 대표를 개인고객그룹장으로 옮겨 자산관리(WM)부문을 맡긴다. 누가 봐도 김 대표에 대한 감독의 테스트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도 결정적인 골을 넣었다. 그룹장 3년 만에 개인고객 금융자산을 기존보다 두 배(21조2000억원→41조6000억원) 수준으로 늘리고 2023년 6월에는 50조원대도 넘겼다. 한국투자증권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자산 증가였다.
■ '사업성' 가리는 능력 탁월...꼼꼼함과 추진력 '강점'
김 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라고 표현한다. “일단 사업성 여부를 구별해내는 능력이 탁월하고 착수한 업무에 대해선 강한 추진력으로 성과를 일궈낸다”는 것이다.
그가 IB부문장을 맡았던 당시 각종 해외 출장에서 특유의 돌파력과 영업력으로 현지 금융사 관계자들을 만나 다양한 딜을 성사시키고 업무협약(MOU)까지 연결해낸 성과는 이 같은 면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기존 지점 채널을 중심으로 판매되었던 발행어음을 다양한 금융플랫폼으로 채널을 확대해 큰 반향을 일으킨 것 역시 김 대표가 반년간 공들여 작업한 덕이었다. 당시 토스뱅크를 통해 판매된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은 출시 4일 만에 2000억원 완판 기록을 세웠다.
또 거래처 관계자라면 직위 여하를 막론하고 기꺼이 허리 숙여 깍듯이 예우하는 프로다움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놀라는 순간들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업무에 대해선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디테일에 강합니다. 계획부터 진행까지 꼼꼼하고 치밀합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업무 강도가 강하지만 동시에 성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확실히 보상합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현재 순이익 스코어는 6232억원. 1위를 달리던 키움증권(6299억원)이 영풍제지 사태로 인한 악재로 미끄러지면서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내내 충당금을 쌓으면서 한때 4위권까지 밀려났던 만큼 한시도 마음을 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국내외 대체투자 규모가 컸던 만큼 돌아보고 챙겨야 할 구멍들도 적지 않다. 부동산 PF 리스크에 대해 CEO의 책임을 묻겠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경고’는 어깨를 더 무겁게 한다. 누구보다 PF시장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김 대표인 만큼 투입 초반부터 속도를 내기보단 숨고르기를 하며 경기를 주도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 대표는 취임사를 통해 “아시아 1위 금융투자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리스크 관리로 실점 위기를 방어하면서 날카로운 공격을 이어갈 수 있을까. 타고난 스트라이커 김성환의 플레이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