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 다연장로켓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잭팟이 터질 것 같았던 K-방산의 분위기에 어두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는 국방 수요 확대를 불러왔지만 유럽의 움직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의 안보 비용 추가 부담 압박에 유럽 주요국가들은 ‘자체 재무장’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의 방산은 ‘잘 만들고 빨리 납품한다’는 명성으로 러브콜을 받아와 수요의 급증을 기대했다.

■ 미국 의존 줄이려는 EU, 역내 방산 육성 가속

스웨덴 비영리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24 국제무기 거래 동향’에 따르면 폴란드는 한국의 무기 전체 수출량의 46% 차지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K9자주포, 루마니아는 레드백 장갑차 및 K2전차 사업에 관심이 높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한국과 군수 협력 분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거나 협력을 진행 중인 유럽 국가는 총 16개국이다.

정부 및 방산업계는 검증된 무기체계 및 가격 경쟁력 등을 이점으로 1280조원 규모의 유럽 수요 흡수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을 중심으로 퍼지는 자국우선주의는 한국 기업의 접근을 막고 있다.

유럽방위청(EDA)의 연례보고서(Annual Report 2024)에 따르면 EDA는 유럽산 무기 공동조달 확대를 핵심 과제로 명시하고, 국방 역량 강화를 위한 비EU 공급처 의존 축소를 공식화했다.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 정책은 핵심은 유럽산 무기 시스템에 대한 보조금 확대, 공동방위기금의 유럽 기업 우선 지원이다. EU는 오는 2030년까지 역내 무기 구매 비중을 65%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총 1500억 유로(약 239조원) 규모의 공동조달 지원책도 마련했다.

LIG넥스원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II' 사격 모습 (사진=LIG넥스원)

■ ‘바이 유러피안’ 역풍에 한국 방산기업들 속앓이

예외적으로 지원금의 일부를 제3국산 무기 구매 시에도 허용하는데 ‘EU 가입 신청국·후보국,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국가’로 한정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파트너십을 체결해 자격요건을 갖췄다. 그러나 공동구매 시 완제품 가격의 65%에 상응하는 부품이 유럽자유무역협정(EFTA) 권역이나 우크라이나 내에서 공급해 조건이 까다롭다.

유럽은 미국산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SIPRI에 따르면 2020∼202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회원국의 미국산 무기 비율이 52%에서 64%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자체 조달만으로 빠른 재무장은 어렵지만 바이 아메리칸에 맞서는 과정에서 바이 유러피안이 강화된 것이다.

우리나라 방산기업은 해외 조달시장 진입을 위해 합작 법인 추진, 공동 기술개발, 현지 공장 설립 등의 활로 찾기에 분주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앨라배마에서 탄약·부품 공장을 운영 중이며, 루마니아에는 오는 2027년까지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차의 생산·정비 거점을 구축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화에 따른 일자리 공백 우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지만 수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 정국으로 인한 컨트롤 타워 공백이 방산 수출에 타격을 주지 않도록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