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무역대표부(USTR)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7월 관세유예 종료… 정부, 패키지딜 본격화
오는 7월 8일 미국과의 ‘상호관세유예’ 조치가 만료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세 철폐를 위한 이른바 ‘7월 패키지딜’을 본격 추진 중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관세 폐지다. 그러나 과정은 복잡하고 민감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는 6월 말까지 협상 타결을 목표로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본격 협상은 차기 정부의 몫으로 남겨져 시간은 번 셈이지만, 준비가 충분치 않다. 특히 철강, 조선, 기계 등 중후장대 산업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되며, 산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주요 협상 의제를 한 번에 묶어서 논의하는 패키지딜의 핵심은 관세 폐지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한국의 모든 철강·알루미늄 수입 제품과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이 상호관세 발효를 90일 유예하면서 관세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번 패키지딜은 단순한 관세 철폐를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핵심은 ‘조건부 자유화’. 단순한 무역 개방이 아닌, 한국 산업의 전략적 이익을 전제로 한 상호 협력 모델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에 쏠리는 시선…키워드는 ‘인력 양성’과 ‘기술 공유’
지난 4월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에서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패키지딜의 방향성과 범위를 논의했다. 협상 테이블 위에는 철강·조선·기계는 물론, 에너지·무역·투자까지 포함된 포괄적 이슈가 올라와 있다.
특히 미국의 관심은 조선업에 집중되고 있다. 글로벌 탈탄소 전환에 따른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중국·유럽과의 치열한 수주 경쟁이 맞물리며 한국 조선사와의 협력을 원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인력 양성과 기술 교류를 핵심 카드로 제시할 방침이다.
해외 조선소 및 부품업체와의 기술 협력은 기회인 동시에 리스크다. 특히 스마트십 시스템 관련 지식재산 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 기술이 사실상 해외에 공유될 경우 기술 유출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업 전반의 인력난을 고려할 때, 양성은커녕 내수 확보조차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HD한국조선해양이 2023년 인도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사진=HD한국조선해양)
트럼프 1기, 양보 당한 철강업계…기대와 함께 경계심
이와 달리 철강업계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함께 깊은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한국 정부는 철강 관세 분야에서 미국에 양보안을 내줬다. 2018년 3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했다가 대미 수출 철강 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로 방향을 바꿨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철강재 수출량은 2017년 340만t에서 쿼터제 적용 직후인 2018년 250만t으로 급감하는 등 철강업계는 위축됐다.
이번 패키지 협상은 단기적 관세 문제를 넘어, 중후장대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 직결된다. 단기 수출 확대보다 구조적 경쟁력 강화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당장 트럼프 파고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우고 중국 의존도가 높은 낡은 제조업 전략에서 탈피해 신성장동력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전략적 대응 필요
협상 타결까지 남은 시간은 약 두 달. 중후장대 산업을 둘러싼 긴장은 단순히 관세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표준화, 노동력 확보 등 장기적 과제와도 연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은 단기 수출 회복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재편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탈중국 공급망 전략, 친환경 중심 기술표준 경쟁, AI 기반 산업 자동화 등과 맞물려 새로운 제조 패러다임을 설계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협상 타결까지 남은 시간은 약 두 달. 침묵 속의 대기 속에서도, 산업계는 치열한 시뮬레이션과 이해관계 조율에 들어간 상태다. 이후 만들어질 새로운 질서로의 진입을 위해 외교의 그림자 뒤에 있는 산업계의 장기 정책 청사진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