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난 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그림. 이재명 후보가 강연 중 기본소득을 쉽게 설명하려고 예시로 든 이야기를 지지자 정아무개씨가 손그림으로 보냈고, 이를 토대로 캠프 자원봉사자가 그래픽 작업한 것이다.(그래픽=이재명 캠프)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본인의 시그니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옹호하기 위해, 소위 '호텔 경제론'을 펼친다고 한다.

> “일부 경제학자들이 반론하던데, 과거에 쉽게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들었던 예”라며 이를 다시 언급했다. ‘한 여행객이 마을 호텔에 10만 원의 예약금을 지불 →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가구점 외상값 지불 → 가구점 주인은 치킨 구매 → 치킨집 주인은 문방구에서 물품 구매 → 문방구 주인은 호텔에 채무 상환 → 이후 여행객이 호텔 예약을 취소하고 10만원을 환불받은 뒤 떠나는 상황’을 가정했다. 그러면서 “이 마을에 들어온 돈은 결국 없는데, 거래들이 발생했다. 이게 경제다”라고 했다. 일단 돈이 한 바퀴 돌면 침체한 지역 상권에 활력이 더해지니, 이를 위해 지역화폐를 더 찍어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출처: 중앙일보]

필자는 20년간 주식거래를 직업으로 해온 자본주의자이나, 지역화폐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다만, 이 ‘호텔 경제론’은 직관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고 ‘노쇼 경제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불필요한 논쟁을 만드는 것 같아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때로는 '왜 이것이 필요한가'를 설명하기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왜 문제가 되는가'를 얘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어떤 지역에 미용실, 식료품점, 식당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미용실 주인은 식료품점 사장님과 식당 사장님 머리를 잘라주고, 그 돈으로 장을 보고 밥을 먹는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미용사가 쿠팡 와우에 가입하게 된다. 퇴근이 늦어 식료품점이 문을 닫아 낭패였던 상황에서, 새벽배송은 너무 편리했다. 미용실 주인이 더 이상 식료품점을 찾지 않자, 상점 사장님은 수입이 줄어 식당을 가지 않고 집에서 라면을 먹기로 한다. 식당 주인은 수입이 줄자 한 달에 한 번 하던 이발을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인다. 미용실 주인도 수입이 줄어 결국 집밥을 하기로 결심한다. 식당은 결국 문을 닫는다. 고정 거래선마저 사라진 식료품점도 문을 닫는다. 손님이 없어진 미용실도 문을 닫는다. 원래 미용사, 상점 사장님, 요리사였던 세 사람은 실업수당에 의존하며, 쿠팡에서도 필수품만 겨우 사게 된다.

이게 '쿠팡 경제론'이다. 우리는 흔히 '혁신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받아들이지만, 사실 혁신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플랫폼 혁신은 대표적인 '부가가치 파괴형 혁신'이다. 한국의 유통 지배 사업자가 비효율적이어서 50원짜리 물건을 100원에 팔아왔다. 말도 안 되는 폭리지만, 어쨌든 이 유통업은 50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워낙 비효율적이다 보니 특정 품목에 특화돼 70원, 80원에 파는 전문 유통업자도 함께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최신 IT 기술과 긱워커(단기 계약이나 건당 보수를 받는 비정규·프리랜서 형태의 노동자)로 무장한 혁신 기업이 모든 물건을 60원에 팔아버린다. 결국 기존 유통업자들은 몰락하고 시장은 독점된다. 산업의 부가가치는 20~50원에서 10원으로 급감한다. 하지만 혁신 기업은 줄어든 부가가치를 독점하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쌓는다. 남을 죽여 독점으로 큰 돈을 버는 것, 이것이 플랫폼 혁신이다.

물론, 폭리를 취하던 비효율적 기업도 문제다. 혁신을 막으면 외국 기업이 우리 시장을 침투할 수도 있다. (쿠팡을 막았더니 알리바바가 들어온다면?) 경쟁은 필요하다. 식당이나 식료품점 사장님이 다른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너무 빠르게 이뤄지면,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래서 위에 든 '쿠팡 경제론'처럼 미용실, 식당, 식료품점이 한꺼번에 망해버리면, 그 지역엔 아무런 희망이 없어지고 지방정부는 실업수당 지급으로 더 큰 재정부담을 지게 된다. 지역 경제는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게 되고 활력을 잃는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는 문제다. 새벽배송이 없고 물건이 조금 비싸더라도 공동체 구성원들이 일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지역화폐는 쿠팡에서의 소비 일부를 동네 식당과 식료품점으로 유도할 수 있게 해준다. 지역화폐를 쓰게 하기 위해선 할인 등 보조금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에 부담이 된다. 그러나 지역 경제가 몰락해 세수가 줄면 더 큰 재정 부담이 생긴다. 삼성전자가 적자를 내자, 한 해 수천억 원씩 지방세를 받던 수원, 화성, 평택시가 혼란에 빠졌다. 포장하던 도로와 짓던 다리 공사가 중단됐다. 플랫폼 기업들은 대부분 지방세도 거의 내지 않고, 법인은 해외에 있다.

작년 말 계엄 사태 이후 국내 내수 경제는 사실상 괴멸 상태다. 이른바 'GDP 역성장'도 일상화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내수 경제 부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며, 한정된 재정을 효율적으로 가치 있게 써야 한다.


■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