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회사로 가는 직장인과 학교로 가는 학생들은 대개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다. 출근과 등교는 ‘최소 주 5일을 해야 한다는 점’과 ‘그럼에도 하기 싫다는 점’이 같기에 아침 시간 직장인과 학생의 표정은 서로 닮아있다. 그래서 등교하는 이름 모를 중고등학생들에게 가끔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덜 뜨인 눈과 무거운 몸으로 정류장을 잘도 찾아가는 그 행렬 속에서 ‘회사 가는 이’와 ‘학교 가는 이’는 서로에게 ‘힘내라. 나도 힘을 낼게.’라는 나직한 응원을 보낸 뒤 제 갈 길을 갈지도 모른다.

10여년 전 살던 동네에서 꽤 유명한 소녀가 있었다.

동네 사람 모두가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녀의 이름이나 사는 곳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녀가 유명한 이유는 신경 섬유종이 그 아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목구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심한 아이였다.

출근길에 마주친 그 아이는 늘 혼자였고 작은 어깨에 걸친 가방이 흘러내릴 듯했으며 얼굴 부위의 무게 때문인지 고개가 살짝 틀어진 채로 터벅터벅 등교 중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었고, 그래서 옅은 응원조차 할 수도 없었다.

‘나의 출근과 그 아이의 등교가 정말 같은 하루를 감당하려는 행동일까’ 생각했다. 그저 그 아이에게 오늘 하루 어떠한 모멸이나 값싼 동정도 없기를 바라며 지나쳤다.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저 작은 친구가 그간 어떤 시선들을 감당하면서 살았을지, 앞으로는 무엇을 더 버텨야 할지를 거듭 생각할수록 정신이 아득해졌으니까.

가끔 이른 퇴근을 하는 오후에도 밝은 표정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이들 틈에서 여전히 불안정하게 가방을 멘 채 혼자 걷는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잠시 방향이 같은 길, 그 소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내가 자주 걱정했던 것은 가령 악의가 없고 호기심이 많은 어떤 어린이의 눈에 소녀가 포착되는 상황이었다.

혹여 다가와 “얼굴이 왜 그래요?” 묻거나 “엄마, 저 언니 얼굴 좀 봐” 하는 어린이가 제발 그 소녀 앞으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소녀 주변에 커다란 결계를 만들어 주며 나는 그 짧은 길을 아이의 등을 보며 걸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흘렀고, 나는 아내와 딸이 생겼다.

태어날 무렵부터 코끼리 인형에 애착을 보인 딸은 실제 코끼리를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요즘 동물원은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인간적인 공간이 됐다. 동물을 존중하는 시스템과 환경, 관람객의 태도를 모두 갖췄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는 별개로 동물들은 여전히 구경의 대상이다. 특히나 우리는 그곳에 전시된 동물들이 그 개체가 속한 종을 대표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동물원은 가능한 한 관람객에게 모든 동물의 가장 ‘이상적인 전형’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가령 선천적 기형을 가지거나 생김새가 조금 다른 코끼리나 원숭이는 동물원에서 관람객을 맞을 수 없다. 오직 도감 속 동물의 전형과 똑같은 크기·외형을 지닌 개체만이 전시되고 그것을 본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 동물의 ‘전형적 모습’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정상 범주의 전형에서 어긋나는 생김새는 무신론자에게도 “누가 저 개체의 유전자에 기형을 설계했을까?”라는 혼란을 주고 신앙이 있는 이들에게는 ‘탈락한 개체가 받는 일종의 형벌’이라는 오만한 구분의 의식을 만들어낸다.

<어떤 대상의 ‘전형’이란, 우리에게 자연이 어떤 목적을 갖고 움직인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자연은 다루기 어려우면 예측 불가능한데다 우리가 흠 없이 완벽한 전형을 통해 포착하려 하는, 혹은 피하려 하는 모습보다 훨씬 더 무궁무진하다. 자연은 언제나 법칙에 예외를 두며 전형적인 것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로써 자연은 우리에게 어떤 것이 ‘자연적’이라든지, ‘자연의 불완전함을 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사고하는 방식의 토대가 파도에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든든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런 편견들을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그리고 충격과 공포로 깨뜨리는 존재가 바로 자연계의 비정상적이거나 기형인 생명체들이다.>
- 자연의 농담(2012) / 마크S.블럼버그 / 알마

내 어깨에 목마를 탄 채 놀란 눈으로 코끼리를 구경하는 딸을 보며 고민이 깊어졌다. 반려견 한 마리를 들일 때도 혈통 인증서를 요구하는 한국에서 나는 어떻게 생명체 외형에 박제된 전형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딸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몸은 원래부터 이렇게 보이게끔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자연은 얼마든지 이형과 기형을 만들어내고 그건 결코 절대자의 의도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때 그 소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섬유종과 주변 시선들이 모두 가벼워졌기를 바라지만, 무엇보다 오늘 아침 그 아이가 씩씩하게 힘을 내며 집을 나섰다면 좋겠다.

그 정도의 마음속 나직한 응원은 자연이 무심하게 만들어낸 이 세상 어떤 인간 사이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니까.

김선욱 레디투다이브 대표

■출판사에서 10년간 마케팅을 하며 <소행성책방>, <교양만두> 등의 채널을 통해 지식교양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현재 출판사 '레디투다이브'의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