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니소’ 매장에서 오리온 꼬북칩을 살펴보고 있는 현지 소비자. 사진=오리온
식품업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풀무원, 오리온, 삼양식품이 줄지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등 호실적을 거둔 기업들 덕분이죠. 식품업계 실적 개선 요인은 ‘K-푸드’의 약진입니다. 식품업계는 전통적으로 내수 업종에 해당했었지만, 이제 실적에서 해외시장을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식품기업들의 눈부신 성적표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해외시장에서 치열한 비용절감 노력을 통해 내실경영의 빛을 봤다는 점입니다.
■높은 수익성 열려 있는 해외시장, ‘무조건’은 아냐
최근 해외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삼양식품의 경우, 일찌감치 해외시장 공략에 주력해 현재는 해외 매출 비중이 78%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해외시장을 중심으로 판매가 늘면서 올 상반기 매출 8102억원, 영업이익 1696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52.6%, 149.7% 급증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삼양식품 호실적은 현지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했습니다.
삼양식품에 따르면 현재 해외시장은 국내보다 마케팅 비용이나 판매관리비용 등이 적게 소요돼 마진율이 높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삼양식품 수출은 컨테이너에 제품을 실어서 그대로 현지 판매법인 또는 거래처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수출제품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유통구조가 비교적 간결하다 보니 운송비 부담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더 큰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고 있죠. 올 상반기 삼양식품 영업이익률은 20.9%에 달합니다.
물론 해외시장에 진출한 기업이 모두 눈부신 성공만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풀무원도 올 상반기 사상최대실적을 새로 썼지만, 해외 사업에서는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긍정적인 것은 현지 공장 증설 등 꾸준한 투자를 바탕으로 비용 절감 성과를 거두면서 흑자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상반기 기준 해외사업 적자를 124억원에서 28억원으로 줄이면서 실적 성장을 뒷받침했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영업이익은 오히려 소폭 뒷걸음질 쳤죠. 상반기 풀무원 영업이익률은 2.1%대로, 낮은 수익률은 풀무원이 꾸준히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과제입니다. 현재 풀무원 해외 매출 비중은 19.5%로, 미국 등 핵심지역 사업이 궤도에 오른 만큼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흑자전환 이후 수익성 개선 효과가 기대됩니다.
■꾸준한 체질 개선 노력…비용 줄이고 시장 늘리고
롯데 인디아 본사 전경. 사진=롯데웰푸드.
해외시장에 안착한 기업이라고 해서 마음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리온 올 상반기 매출은 1조4677억원, 영업이익은 2468억원으로, 중국 등 해외법인 성장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는데요. 오리온에게 중국은 국내보다 매출·수익 비중이 더 큰 핵심 시장입니다. 오리온은 지난 1993년 중국에 진출한 뒤 30여년에 걸쳐 현지 기업에 비견될 입지를 구축했지만, 아직도 영업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리온은 중국에서 현지 법인을 통한 직접영업과 경소상(상품에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중간상)을 통한 간접영업 방식을 모두 사용해 왔는데요. 최근 현지 사정을 고려하면 간접영업체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영업방식을 전환했습니다. 또, 일부 원료는 자체 생산 시설을 구축해 원료비 및 물류비 절감 등 비용 효율화 노력도 기울이고 있죠. 이밖에 베트남, 러시아에서 제품 경쟁력을 제고하고, 인도, 미국 등 신시장 확대를 위한 투자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꾸준히 비용 효율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30일에는 인도 현지 통합 법인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글로벌 사업 강화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인도 시장에서 통합 시너지를 통해 경영효율화를 제고한다는 목적입니다. CJ제일제당 역시 지난해 중국에서 짜사이 및 장류를 생산하던 ‘지상쥐’를 매각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K-푸드 글로벌전략제품(GSP)에 좀 더 힘을 쏟겠다는 전략이었죠. 양사 모두 현지 대형채널 입점, 신규 국가 진출 등 시장 확대에도 주력할 예정입니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현지 초코파이 생산라인 증설 및 빼빼로 생산라인 신설 등 생산능력 확대가 완료되면 생산 및 운송 비용 감소는 물론 매출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양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만큼, 인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신규 시장을 중심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드오션’에 고정비 증가까지…국내보단 진출국서 비용 줄인다
삼양식품 마라불닭볶음면 태국 디지털 광고. 사진=삼양식품.
물론 국내 식품업체들이 해외 진출에 매진하는 주된 요인은 국내시장의 성장 정체 때문입니다. ‘레드오션’이 된 국내시장에서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 규모가 크고 높은 수익성도 기대할 수 있는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죠. 그러나 최근 식품업계가 국내시장에서 고심하는 더 큰 문제는 비용증가입니다. 제품 가격은 올리지 못하는데 지속적인 세금인상과 물가 폭등, 인건비, 원자재비 등 제품 생산을 위한 고정비가 늘고 있어서인데요.
이 때문에 K-푸드 열풍으로 해외시장 매출 비중도 높아지는 마당에 진출국에서라도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확보하겠단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고, 그 결과가 이번 실적 잔치에 한몫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식품·유통업은 현지 진입장벽을 뚫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당장 국내에서도 가공식품은 유명 글로벌 기업 제품이 아니면 쉽게 찾아볼 수 없죠. 우리 일상에서 해외 가공식품을 소비하는 비중을 따져보면, 우리 기업들이 외국에서 현지 기업과 경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은 꾸준히 해외시장 문을 두드려 왔고,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해외 실적 호조’는 마치 마법의 주문 같이 보일 지경입니다. K-팝과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음식까지 이어지면서, ‘K-푸드’ 딱지만 붙으면 날개 돋친 듯 팔릴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데요. 영토확장과 동시에 내실다지기에도 성공, 숫자로써 능력을 입증하고 있는 국내 식품기업들의 올해 상반기 성적표가 더욱 빛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