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짧다. 음식을 챙기는 일이 귀찮아서, 물과 함께 삼키면 포만감이 차오르는 알약이 하루빨리 시판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입맛도 저열해서 평양냉면은 아무리 먹어도 내 어휘력으로는 무슨 맛인지 표현이 불가하고, 교양의 차원에서 분자요리에 대한 글을 읽다가 정신이 아득해진 경험도 있다.

간단히 말해 내게 음식은 고픈 배를 잠재우는 도구이며 식사란 안 먹을 수 없으니 끼니를 때우는 시간이다. 그러니 유명 맛집이라는 점포의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기분이 복잡해진다.

얼마 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 중구의 한 브런치 전문점 대기열에 합류했다. 티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오만상을 쓰는 내 얼굴을 달래가며 아내는 “기다린 보람이 있을 것”이라 장담했다.

그래. 그 긴 시간을 모두 감내해 먹는 브런치라는 것은, 미각에 관한 한 바보인 내게도 응당 특별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1시간 30분 가량을 길에 버렸고, 환히 웃으며 “입장을 도와드리겠다.”는 점원을 나만 아는 찰나의 매서운 눈으로 쏘아본 후, 테이블에 앉아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리조또와 파스타, 에그베네딕트가 나왔고,
파스타를 낼름 퍼담으려다 사진 먼저 찍어야 한다는 타박을 들었으며.
“이제 먹으라”는 아내의 신호를 기다렸다가,
내가 강아지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고,
한 스푼 입에 넣어 씹었으며, 삼켰다.
나쁘지 않았지만 놀랍지도 않은,
나를 미식의 세계로 초대하지는 못하는,
말 그대로 ‘아는 맛’이었다.

꽤 큰 저택을 개조해 만든 그 식당은 통유리창으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걸 먹으려 저 문밖으로 수십 명이 줄을 지어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었다. 설레는 얼굴로 대기 중인 그들이 하염없이 가엽게 느껴졌고, 그런 나를 아내가 가엽게 보고 있지 않았을까. 나의 무지함과는 달리, 요리는 현생 인류를 사람답게 만든 최초의 행위였다.


『포크를 생각하다』 (비 윌슨 / 까치 / 2013)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 년 전에 ‘냄비’ 혹은 ‘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리 도구가 처음 생겼다고 한다. 이전까지 주로 생식을 했던 인류는 식재료를 냄비에 넣어 익혀서 먹은 후부터 잉여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었다.

채소나 육류를 생으로 먹으면 음식물을 소화하는 일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냄비를 활용한 뒤 우리 조상은 비축된 에너지로 뇌의 크기를 키울 수 있었고, 그 결과가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다. 말 그대로 조리 도구가 우리를 직립하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바꿔준 셈이다.

또 현대의 고고학은 ‘치아 상태가 좋지 않으면서 장수한 인간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까마득한 옛날 치아와 관련된 질환은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즉 현생 인류의 조상은 치아가 아프면,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해 죽었다는 이야기다. ‘맛알못’인 나조차 익힌 음식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상상도 못 한 채 세상을 등진 유인원들을 떠올리면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조리’는 인간 수명에 기여함은 물론, 찬란한 문명을 직접적으로 꽃피우게 만든 위대한 행위다.

이 행위가 1만 년 후에도 먹방은 물론, 식도락 콘텐츠와 셰프들이 등장하는 여러 프로그램까지 수많은 이들의 인생과 여가에 큰 즐거움을 주고 있으니. 음식이란 오직 나에게만 몰이해의 영역인 듯하다.

새삼 요리와 먹는다는 일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나는 이만 컵라면에 물을 부으러 가봐야겠다.

김선욱 레디투다이브 대표

■출판사에서 10년간 마케팅을 하며 <소행성책방>, <교양만두> 등의 채널을 통해 지식교양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현재 출판사 '레디투다이브'의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