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 등 재의요구 안건이 상정되고 있다.(연합뉴스)
주식을 영어로 뭐라 부를까? 가장 익숙한 단어는 Stock일 것이다. 물론 다른 말도 있다. Equity다. 왜 영어에는 서로 비슷하지도 않은 두 단어가 모두 주식을 가리킬까.
Stock은 나무 그루터기를 뜻하는 고대 영어 Stocc에서 왔다. 자라던 나무가 잘려 목재가 돼듯, 한 기업의 가치 일부가 거래되는 조각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예전에는 주식을 나무조각으로 만들어서 주주들에게 증권(징표)으로 나눠줬기 때문이란 풀이도 있다. 어떤 식으로 보든 Stock은 무언가 하나의 뿌리를 가진 존재를 나누어서, 각자 갖고 거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Equity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Equity라는 말은 근세 영국의 형평법(Law of Equity)에서 나왔다. 한국과 유럽은 대륙법 체계를 따르지만 영국과 미국은 다른 법체계를 갖고 있다. 법전에 기록된 법을 뜻하는 보통법(Common Law)은 대륙법과 영미법이 공유하지만, 영국과 미국에는 보통법 이외에도 판례에 기반한 형평법이 있다. 법전의 내용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형식적인 경우에 법 체계에 없는 도덕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별도의 법체계를 만든 것이다. 원래 기업은 개인의 소유였다. 그런데 그 소유권을 잘게 쪼개서 나눠갖는 행위 - 주식을 발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발명이었기에 주식에 대한 내용이 기존 법전에 있을리 만무했다. 그래서 주식과 관련된 분쟁은 법전 이외의 세계를 관장하는 형평법의 소관이었고, 그래서 주식이 Equity가 된 것이다.
주식이 Equity라는 것은 '형평(equitable)해야 한다'는 주식의 정의를 보여준다. 무엇이 형평하다는 것인가. "형평"은 "평등"과 다르다. 주주들이 모두 평등하다면 주식을 한 주 들고 있건 100주 들고 있던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고, 형평하다는 것은 주식을 한 주 들고 있는 사람은 100주 들고 있는 사람의 백 분의 일의 권리를 가지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주식은 나누어서 거래한다는 뜻과, 주주로서의 형평한 권리를 가진다는 두 개의 기둥 위에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두 개의 기둥 중 하나(Stock)만을 선택해 주식-株式(かぶしき)이라고 번역한 건 불행한 일이다. 나무 그루터기 주(株), 제도 식(式)을 써서 '나무로 된 제도'라고 했다. "카부시키(주식의 일본어 발음)"에는 Equity의 개념, 주주에게 주어진 형평한 권리의 개념이 없다. 그저 시장에는 거래되는 나무 쪼가리일 뿐이다.
대개의 외래어가 그렇듯, 한국은 일본을 보고 서양을 배웠기 때문에 카부시키를 그대로 들여와 주식이라는 개념을 이해했다. 한국에 공개된 주식시장이 나온지 어언 반세기. 한국 주식시장은 전세계적으로 거래가 아주 활발한 시장 중에 하나가 됐다. 카부시키-Stock의 개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주식에는 Equity의 개념이 없다.
삼성전자 1주를 갖고 있으면 현재 주가로 5만5천원이 전부이지만, 아무리 소액이어도 약 6천만주로 대현되는 삼성전자의 주인 중 한 명이 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 주식으로는 기업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행사할 수가 없다. 요즘 뜨는 모바일 주식거래 프로그램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식을 매수한다는 표현대신, '구매하기'라는 말이 버튼에 적혀있었다. 그래, 뭘 구매했는가. 주식을 구매한 한국 주주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그 기업의 주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신문기사에 나오는 "회장님의 결단"이라는 제목이 싫다. 비상장회사라면 괜찮다. 그 회사는 주식이 발명되기 전의 개인 기업이니 회장님이 결단해서 기업을 키우던 망하게 하던 상관이 없다. 하지만, 상장회사에 이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드라마에 나올법한 재벌 회장님들과 그 자제분들이 가진 상장회사 지분, 기껏해야 전체 주식의 30%~40% 수준이다. 회사의 절반 이상은 그 회장님들 소유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절반 이상의 "Stock" 보유자들은 그 어떠한 주인으로서의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다. 지주회사, 이중상장, 이사회 장악, 사모펀드(Private Equity) 등의 수단을 통해서 30-40% 주식만을 갖고 있을 뿐인 사람들이 회사의 100%를 결정한다.
그래, 결정하는 것까지는 좋다, 형식 뿐이지만 그래도 주주총회를 통해 선출되신 분들이니까 정당한 권한이 있다. 그런데 회장님의 결단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혹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면? 나머지 주주들이 경영진을 교체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최소한 이해할 수 없는 결단을 멈추게 하거나, 최소한 비판의 목소리는 직접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소액주주들이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수단이 없다.
국회에서 이사회 구성원이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으나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어떤 분들은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통계수치를 동원해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이유는 지배구조 때문이 아니라 상장 기업들의 성장률이 낮아서라고 한다. 필자에겐 이 주장은 마치, "사람들이 북한을 싫어하는 것은 3대 세습 독재 때문이 아니라, 북한경제가 성장률이 낮아서다"라는 주장처럼 들린다. 북한이 북한인 이유는 독재와 이를 지키기 위한 폐쇄성 때문이다.
또 어떤 법 전문가분들은 미국이나 영국에도 그런 법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법 전문가분들이 한국이 따르고 있는 대륙법 체계와는 다른 영미의 형평법을 모르실 일이 없을텐데 의도적인 호도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미국에는 경영자가 상장회사를 운영하면서 사적으로 비상장회사에서 유사한 사업을 했다가 처벌받은 일, 주주들에게 회사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지 않았다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했던 일 같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판례들이 수없이 쌓여있다. 그런 판례들을 바탕으로 '형평'을 지켜주는 사회제도 안에서 주식이 Stock이자 동시에 Equity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quity로서의 가치가 없고, Stock으로만 기능하는 게 한국 주식이다. 주식을 들고 있어도 주인으로서의 권리가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주식의 유일한 권한은 '팔 수 있는 권리' 뿐이라고. 아무런 권리가 없이 거래만 잘되는 자산의 대표적인 것이 가상화폐다. 가상화폐는 내자가치라는게 없으니 주식이 낫다고 말하기엔 한국주식 참 민망하다. 그래서 다들 가상화폐로 가나보다.
회사의 경영진은 사회계약상, 회사의 주인인 주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고용인이다. 주인인 주주에게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고하고 의사결정에 참여시킬 의무가 있다. 어떤 기업 중 하나는 대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공시했는데, 왜 그 돈이 필요하고 왜 그 돈을 주주들이 부담해야 하는지 아무 설명도 없는 전격적 발표였다. 주주를 대신해야할 사외이사들은 단 몇 시간만에 모든 자료를 검토했다고 한다. 왜 그랬냐고 하니, 사업상 비밀이라고 한다. 생각해보시라, 살고 있는 아파트를 임대했다. 1년 뒤에 갔더니 세입자가 집 구조를 다 바꿔놨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개인정보라 가르쳐줄 수 없다고 한다.
상법 개정으로 시작되는 일련의 소액주주 보호 움직임은 한국 주식이 '나무쪼가리'에서 '주인된 권리를 증명하는 징표', 즉 Equity Value를 가진 존재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다. 반대편에선 상법개정을 하면 주주가 자꾸 경영에 개입해서 기업 성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어 악법이라고 한다. 언제는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이유가 지배구조가 아닌 기업성장성 때문이라더니 자가당착이다. 그럼 30% 주주가 백년 만년 100% 권리를 다 가졌을때 성장성이 좋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Equity 소유자로서 주주들의 정당한 권리를 반복적으로 무시해 왔기 때문에 한국 상장기업이 저성장 늪에 빠진 것이고 그래서 한국이 명예롭게도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주식시장이 된 것이라고 말하는게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다시 한번 북한을 보라!)
주식이란, Stock이자 Equity이고, 두 개념이 어우러져야 가치를 가지는데, 한국은 반쪽 뿐이었다라는 사실을 20년전에 알았으면 이 직업(펀드매니저)을 선택했을까 자문해본 적이 있다. 그래, 적어도 이 전략(가치투자)을 따르진 않았을 것이다. 가치가 없는데 무슨 가치투자를 하겠는가. 타임머신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니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저,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Equity라는 가치가 아주 조금이라도 시작되고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인간은 만족이 아니라 희망으로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부족하지만 지금은 희망의 계절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올 때 필자 직업인으로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주식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