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전북 전주에서 2400원을 착복한 버스 기사가 해고됐다. 해고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2심 재판부는 해당 버스 기사에 대한 징계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2심 재판부의 재판장이 지난달 한덕수 전 총리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함상훈 판사였다.
필자는 횡령 금액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징계해고의 정당성 판단에 반영되는 기타 사실관계가 궁금해져 1심, 2심 판결문 전문을 입수해 사건을 분석해 봤다.
1심과 2심 판결문에서 드러난 이 사건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대상자는 1998년 이 버스회사에 입사해 2014년 4월 7일 해고되기까지 약 16년간 재직한 베테랑 버스기사였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2014년 1월 3일로, 대상자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소재한 우석대학교에서 출발해 중간의 주요 정류소들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서울남부터미널까지 시외버스를 운행했다.
대상자는 운행 도중 ‘3공단’이라는 중간 정류소에서 승객 4명을 태운 뒤 이들으로부터 운임요금으로 현금 4만6400원(지폐 4만5000원, 동전 1400원)을 받았고 그 중 동전 1400원은 운전석 왼쪽에 따로 보관했다. 운행을 마친 후 대상자는 ‘운행일보’를 작성하면서 현금란에 ‘1만1000원 x 4 = 4만4000원’으로 기재했고, 승객들로부터 수령한 현금 4만6400원 중 4만4000원만 회사 측에 납부했다.
이 사건 해고의 정당성 판단에 필요한 기타 사실관계들은 다음과 같다.
□ ‘3공단’ 정류소는 매표소, 매표원이 없어서 간혹 현금승차 인원이 발생하는 정류소라고 함.
□ ‘3공단’에서 서울남부터미널까지의 운임료는 성인 1만1600원, 학생 1만1000원임.
□ ‘3공단’은 정류소의 특성상 학생이 승차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확인결과 대상자가 사건 당일 ‘3공단’에서 태운 승객들은 40~50대 여성들과 요금을 받지 않는 어린아이뿐이었다고 함.
□ 대상자는 16년간 이 버스회사에 근무하면서 징계나 운임료 착복 관련 문제를 발생시킨 이력은 없다고 함.
□ 회사는 운송수입금 착복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조와 협의해 모든 버스에 CCTV를 설치했고, 기사들에게 그 대가로 1일 5000원의 CCTV 수당을 지급했다고 함.
□ 대상자에 대한 징계해고 의결이 있은 날, 3회에 걸쳐 총 800원을 착복한 동료 버스기사는 징계정직 처분을 받았음.
□ 이 회사의 관련규정
-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악 제42조에 ‘회사는 조합원이 재산을 횡령 또는 운송수입금을 부정 착복한 증거가 확실한 경우 노조 지부와 협의하여 해고한다’고 규정.
- 취업규칙에는 ‘회사의 재산 및 공금을 횡령한 때에는 해고시킨다’고 규정.
- 노조와 별도로 체결한 노사합의서에는 ‘CCTV 판독결과 운전원의 수입금 착복이 적발되었을 시 그 금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
이상이 1, 2심 판결문에 드러난 사건의 전모다. 다수의 징계해고 사건을 수임받아 노동위원회에서 그 정당성을 치열하게 다툰 경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좀 더 정확한 판결을 위해서는 세 가지 사실관계가 추가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우선 첫째, 1심과 2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버스기사가 2400원을 착복한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현금승차 인원에게 거스름돈을 내어줄 때 버스기사가 개인 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승객으로부터 받은 동전 등 일부 현금은 다음 번 운행 시 거스름돈 명목으로 사용하기 위해 회사에 납부하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1, 2심에서 이 부분이 쟁점이 되거나 대상자가 주장한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둘째, 이 회사의 징계처분에 대한 관행 또한 판결문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과거에 이 회사의 운전기사들이 운임료를 착복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 건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드러난 건들 중 징계처분까지 나아간 건은 몇 건인지, 징계까지 나아갔다면 해고에 이른 건들이 존재했는지 등도 이 사건의 징계해고 정당성 판단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하나, 재판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 회사의 노동조합은 매우 이례적으로 해고와 관련해 조합원들에게 불리한 단체협약 뿐 아니라 노사협의서까지 체결했는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사실만으로 봤을 때 이 사건 징계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되는지, 아니면 너무 과한 징계처분이라고 생각하는지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걸 전문가도 아니고 판사도 아닌 내가 어떻게 판단 하느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징계해고의 정당성 관련 법리는 상당히 단순하고, 판사들의 판단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다수의 판단이 더 정확하며, 오히려 법리에도 충실한 판단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해고의 정당성 관련해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당한 이유에 관해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대법원 2014. 7. 10. 선고, 2012다100760 판결 등)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통념이란 특정인의 생각이 아닌 사회의 통념을 의미하고, 사회의 통념이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 평범한 일반인들의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뷰어스 독자들 대부분은 아마도 우리 사회의 보통 평범한 구성원들일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 다수의 판단이 근로기준법 제23조와 대법원의 판단기준에 따라 가장 정확한 판단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필자 또한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이 사건 징계해고는 다소 과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관련 사건을 다수 경험해본 전문가의 관점에서 살펴봐도 그렇다.
비록 2400원을 착복한 것이 고의임이 명백하고(운행일지, 당일 승차인원의 인적특성으로 고의성은 충분히 증명됨), 회사가 운임료 착복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한 사정이 있으며, 노조 또한 운임료 착복은 해고에 이를 정도로 중한 비위행위라는 점에 동의한 사정이 있더라도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① 대상자는 16년간 착복 뿐 아니라 다른 비위행위로 문제를 발생시킨 적이 없음.
② 회사가 기사들에게 운임료를 착복한 경우 액수를 불문하고 해고하겠다는 취지의 경고 등을 통해 기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사실 또한 없어 보임.
③ 2400원을 착복한 후 이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지 않은데, 회사가 이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음.
④ 운임료를 착복한 경우 해고한다는 점에 노조가 동의했더라도,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해고의 기준(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있는 사유)에 미치지 못한 노사간 합의는 무효임.
이러한 이유로 이 사건 해고처분은 대상자의 행위에 상당하는 처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 대부분의 해고사건이 다루어지는 노동위원회에서도 ①, ②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부당한 해고로 판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사건에 대한 독자들 다수의 생각, 즉 ‘진짜 사회통념’이 어떠한지 또한 상당히 궁금하다. 만약 진짜 사회통념이 이 사건을 판단한 법원 판사 개인의 관념과 다름이 분명하다면 앞으로는 ‘일부 개인의 관념’이 아닌 ‘진짜 사회통념’에 따라 해고의 정당성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 이종언 노무사는 현재 노무법인 평정의 대표 노무사로서 고려대학교 재료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득한 후 LG이노텍 인사담당 과장, 노무법인 유앤 수석노무사를 역임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사건을 다수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기업자문, 해고사건 수행, 관련 컨설팅 및 유튜브 채널 [해고라광장]을 운영하는 등 해고와 관련되어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