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내 안티모니 공장을 방문한 최윤범 회장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의 미국 통합 제련소 투자 결정을 두고 회사와 최대주주 연합인 영풍·MBK파트너스의 해석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강조하지만, 영풍·MBK는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추진되는 고위험 투자이자 우호 지분 확보 시도”라고 맞선다. 같은 투자안을 두고 전략산업의 논리와 금융자본의 시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장면이다.
■ 美 테네시에 ‘온산 모델’…미국 공급망 올라타는 고려아연
고려아연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약 65만㎡ 규모의 통합 제련소를 건설하는 투자안을 의결했다. 2026년 착공해 2029년부터 상업 생산에 들어가며, 총 투자 규모는 약 11조원이다. 울산 온산제련소 모델을 기반으로 아연·연·동을 비롯해 안티모니·갈륨·게르마늄 등 미국 핵심광물 리스트에 포함된 전략광물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제련소(U.S. Smelter)’로 명명됐다.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가 전략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미국 핵심광물 공급망을 복원하는 전환점”,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투자”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광산보다 제련·정련 인프라의 자국 내 구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은 해당 전략의 민간 파트너로 편입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 “투자엔 반대 안 해”…MBK 문제 삼는 건 ‘돈과 구조’
영풍·MBK파트너스는 미국 제련소 건설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투자 방식은 “주주가치 훼손 위험이 크다”고 본다. 미국 현지법인의 차입금 약 7조원에 대해 고려아연이 전액 연대보증을 서고 직접 출자까지 포함하면 실질 부담이 8조원 안팎에 달한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다.
연 이자비용만 3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사업 초기 단계부터 본사 재무구조를 담보로 제공하는 것은 과도한 리스크라는 주장이다. 영풍·MBK파트너스는 “미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평가하더라도 재무적 부담은 거의 전부 기존 주주에게 귀속되는 구조”라고 강조한다.
■ JV 유증 참여 논란…‘전략 파트너’ vs ‘우호 지분’
논란이 되는 것은 합작법인(JV)이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10% 안팎의 지분을 확보하는 구조다. 고려아연은 이를 두고 “장기적 전략 파트너십을 위한 자본 설계”라고 설명한다. 대규모 해외 투자를 감당하기 위해 자본 확충은 불가피하며 JV는 단순 재무투자자가 아니라 수요처이자 정책 파트너라는 논리다.
반면 영풍·MBK는 “자금 조달이 목적이었다면 주주배정이 가장 공정한 방식”이라며 JV 구조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는 우회 수단이라고 의심한다. 이들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통해 “경영권 분쟁 중 특정 경영진에게 유리한 제3자 배정은 상법과 판례에 어긋난다”고 맞서고 있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맞물린 지금이 최적기”라고 강조한다. 핵심광물 공급망은 선점 효과가 큰 만큼, 기회를 놓치면 회복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반면 영풍·MBK는 경영권 분쟁 중 이사회가 대규모 투자와 지배구조 변화를 동시에 의결한 점을 문제 삼는다. 충분한 주주 설명과 사회적 합의 없이 이사회 구성을 앞세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이라는 법적 수단을 택한 배경이기도 하다.
■ 전략산업의 선택, 금융의 논리로 재단할 수 있나
과거 비철금속 제련은 원가 경쟁의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안보와 직결된다. 미국은 인듐·갈륨·게르마늄 등 핵심광물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제련·정련 단계는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광산 개발보다 제련·정련 능력의 자국 내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고려아연의 투자가 미국 국방부·상무부와 직접 연결되는 이유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해외 공장이 아니라 미국 공급망의 빈자리를 메우는 전략적 인프라로 설계돼 있다. 제련소는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산업이며 인허가·환경·기술·인력까지 동시에 맞물린다.
이번 갈등은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를 금융의 입장에서 평가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제기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MBK의 문제 제기는 재무 안정성과 주주권 보호라는 금융 자본의 기준에서 일관성을 갖는다. 동시에 고려아연의 선택은 미·중 갈등과 자원 무기화 국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산업·지정학적 판단의 결과다. 전략산업의 무게를 재무적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지 그 반대인지에 대한 시장의 판단에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