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 촉구하는 태안화력 폐쇄대책위 (사진=연합뉴스)
■ 현장은 멈췄는데…법은 계류 중
산업 전환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영역 중 하나는 석탄화력발전이다. 탄소중립 기조 속에서 충남 태안을 시작으로 발전소 가동 중단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은 여야를 막론하고 총 16건이 발의됐고, 대선 공약에도 포함될 만큼 정치적 공감대도 크다. 발전소 폐쇄에 따른 지역경제 붕괴와 고용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럼에도 법안은 22대 국회 출범 이후 단 한 건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태안화력발전소 1호기는 지난달 31일 가동을 멈췄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사례다. 1995년 준공 이후 30년 넘게 약 11만8000GWh의 전력을 생산해온 500MW급 발전소다. 오는 2037년까지 8기의 석탄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될 경우 약 4000명의 인구 유출과 11조9000억원 규모의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 제도 혼선·정쟁 속에 밀린 전환 비용
현재 국회에는 발전소 폐지 지역 지원을 위한 기금 설치, 특구 지정, 고용 전환 지원 등을 담은 특별법안 16건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상임위 문턱에서 논의는 사실상 멈춰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출범 이후 관련 법안 심사는 소위원회에서 형식적으로 두 차례 진행됐을 뿐이다.
논의 지연의 배경에는 제도적 혼선이 있다. 에너지 정책 주무 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되며 상임위 구조가 바뀌었고, 고용 승계와 재원 분담을 둘러싼 부처 간 입장 차도 여전하다. 여기에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정부 조직 개편까지 겹치며 법안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정부는 태안화력 1호기 근무 인력 129명을 LNG 발전소 등으로 재배치하며 ‘일자리 상실 없는 전환’을 강조하지만, 이는 단기 대응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뒤이어 폐지될 60기 가까운 석탄발전소까지 감안하면 구조적 대책 없이는 고용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태안 1~6호기 폐쇄 시 지역 경제 피해는 1조5522억원에 달한다. 당진 1~4호기 폐쇄 시 국내총생산(GDP) 감소 규모는 2조3349억원으로 더 크다. 단순한 발전소 이전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 구조조정은 관리하면서 전환 비용은 유예
철강과 석유화학에는 이미 구조조정과 설비 감축을 관리하는 특별법이 마련됐다. 감축과 전환을 전제로 한 ‘조건부 지원’이 제도화됐다. 반면 석탄발전 지역은 전환의 비용을 감내하면서도 이를 관리할 법적 틀은 아직 없다.
독일은 석탄지역 구조강화법을 통해 140억유로를 투입해 대체 산업과 사회기반시설을 육성했고, 캐나다는 재교육 바우처와 재정착 지원으로 전환 비용을 제도화했다. 반면 한국은 탈석탄 속도에 비해 책임의 제도화는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석탄발전 폐지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문제는 그 속도에 걸맞은 제도가 뒤따르고 있느냐다. 탄소중립을 향한 정책의 신뢰는 목표의 속도가 아니라,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책임을 얼마나 정교하게 제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석탄발전 지역이 언제까지 ‘법 밖의 전환 산업’으로 남을지 정치권의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