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라현 헤이조궁터(平城宮跡)에 위치한 다이고쿠덴(大極殿)은 헤이조궁 부지 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나라 시대 국가 의례와 정무를 주재하던 공간. 2010년 헤이조쿄 천도 1300주년을 맞아 복원됐다. (사진=일본 관광 가이드 홈페이지 갈무리)

"빵빵!"

일본에서는 경적 소리를 쉽게 울리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길을 걷다 어깨라도 부딪히면 먼저 사과하는 문화가 익숙하다는 설명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기자가 머무는 오사카의 거리 풍경은 그런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빵빵대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생각보다 훨씬 한국적이었다. 일본어만 들리지 않는다면, 서울의 어느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 때문에 오사카는 일본이면서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도시로 다가왔다. 오사카의 이러한 모습은 한국과 일본이 역사 속에서 적지 않은 접점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기자는 출퇴근 시간대 전철 안에서 한 승객의 스마트폰 화면에 재생되던 NHK 뉴스 영상을 접했다. 화면에는 한일 정상회담이 나라현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짧게 전해지고 있었다. 나라현은 오사카에서 전철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으로, 고대부터 한반도와의 교류가 이어졌던 공간이다.

'왜 나라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라현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일본 고대 국가 형성기의 중심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백제 시대와도 역사적으로 이어져 있는 공간이다. 정상회담 장소로 나라가 선택된 배경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했다.

■ 일본 국가의 출발점, 나라

나라현 관광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헤이조쿄(平城京)는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을 모델로 조성된 일본 최초의 본격적 계획 수도로 소개된다. 정치와 종교, 문화 기능이 함께 모인 도시였다.

헤이조궁(平城宮) 유적 공원 안내에는 "헤이조쿄는 외교 사절과 승려, 기술자들이 오가며 대륙 문화를 일본식으로 받아들인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아스카·나라시대 상설 전시에서 "일본 고대 불교와 제도 문화는 한반도와 중국을 통해 전해진 요소를 바탕으로 발전했다"고 소개한다. 불교와 건축, 문서 행정 체계가 이 시기에 국가 제도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나라는 일본 내부 전통만으로 형성된 수도라기보다는 동아시아 교류 속에서 국가의 형태가 만들어진 도시로 받아들여진다. 교토가 일본 고전 문화가 정착된 공간이라면, 나라는 그 이전 단계에서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며 국가의 틀을 다져간 공간인 셈이다.

■ 오사카에 남은 백제 문화 그리고 지금

나라에서 전철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오사카도 백제 문화가 전해졌다. 오사카부의 히라카타시에는 '백제사(百済寺) 터'가 남아 있다.

히라카타시 공식 문화재 안내에 따르면, 백제사 터는 7~8세기 무렵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계 인물들이 불교 신앙과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조성한 사찰 유적으로 소개된다. 고대 일본 불교 문화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소다.

히라카타시의 홈페이지에는 "백제사 터는 일본 사회가 한반도에서 전해진 불교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자국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일본 정부가 특별사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오사카부 히라카타시 홈페이지에 소개된 '백제사(百済寺)' 터. (사진=히라카타시 홈페이지 갈무리)

오사카 동부 지역에 남아 있는 관련 지명과 유적은 이 일대가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통로였음을 보여준다. 바다와 내륙을 잇는 길목이라는 지리적 조건은 오사카를 외부에 열린 상업 도시로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개방적 도시 성격의 배경이 됐다. 기자가 머물고 있는 숙소 근처인 오사카의 코리아타운도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역사 인식 속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나라현에서 열린 점은 상징적이다. 교류의 역사가 깊은 공간에서 외교 무대가 마련된 가운데, 최근 일본과 중국의 갈등은 관광과 민간 교류는 물론 경제 협력 전반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 문제는 외교에만 머물지 않고 산업과 소비, 투자 심리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 지난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겪으며 외교 환경이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겪었다. 이후 중국도 전략 산업 분야에서 자원과 소재를 둘러싼 움직임을 보이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민감해지고 있다.

오사카 현장에서 바라본 나라와 오사카 그리고 지하철 안 스마트폰 화면 속 정상회담 소식. 역사적으로 교류가 이어져 온 두 지역이 다시 외교와 경제의 무대 위에 나란히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