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디모스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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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기간제’로 실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이전에 한소은의 연기는 스스로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정도였다. 발성은 물론 배우가 갖춰야 할 보편적인 인간을 섞는 제스처, 상황에 맞는 표정 등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제작진들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무래도 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출발한 것이 컸다. 2010년도 무렵 아이돌 출신들이 브라운관을 독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쓰에이 수지, 에이핑크 정은지, 남성으로서는 서인국 등의 성공을 기점으로 노래를 부르던 아이돌들이 연기에 대거 도전했다. 업계에서는 신인 배우가 아닌 먼저 걸그룹으로 어느 정도 얼굴을 알린 후 연기를 시키는 풍토가 생겨났다. 한소은도 그 무렵에 데뷔해 의지와 상관없이 걸그룹에 몸을 담았다.

“그 당시에 바로 배우를 하는 신인들은 많지 않았어요. 일단 걸그룹을 하다가 연기를 하는 방향이었어요. 신생 회사에서 연습생을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걸그룹 하다가 뭐가 잘 되지 않을 거 같으니까 엄마가 대학이라도 가라고해서 동덕여대 방송연예과를 진학했어요”

걸그룹 시절 그의 파트는 랩이었다. 노래와 춤에 크게 소질이 없었던 탓이었다.

“사실 랩도 못해요. 노래 춤 다 안 되니까 대표님이 랩이라도 해봐라 해서 시작했어요. 송민호의 ‘겁’을 많이 부르긴 했어요. 제 또래 중에 걸그룹 연습생 출신이 정말 많아요. 일종의 성공의 법칙이었는데, 저는 잘 안됐죠. 대학교 때부터는 제대로 배우 생활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연기에 집중했어요. 공연도 하고 연기자 쪽 회사도 접촉하고요.”

한소은의 어릴 적 꿈은 연기자였다. SBS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의 박진희에 흠뻑 빠져 그가 한 대사를 모조리 따라하고 다녔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듯 싶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내고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대학교에서 연기 연습을 매진한 후 100여번의 오디션 끝에 웹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첫 작품 ‘고호의 빛나는 밤에’를 통해서다.

“오디션 다 떨어지다가 2016년에 처음으로 붙었어요. 사실 연기 준비가 덜 돼있었던 거죠. 당시 PD님이 조수원 PD님이신데 저보고 ‘때려쳐’라고도 많이 하셨어요. 얼마나 못했으면 그러셨을까요. 그래도 가능성을 보고 끝까지 저를 믿어주셨죠. 저에게 개인적으로는 은사 같은 분이죠.”

한소은은 스스로 연기가 늘지 않은 것에 연기학원의 시스템과 본인의 기질이 코드가 맞지 않는 것에 뒀다. 학원에서 시키는 연기를 그저 따라하는데 급급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어떤 숙제를 내주면 저는 그냥 흉해냈던 거 같아요. 그 작품 배우와 비슷하게 따라하고 숙제를 처리하는 식으로 연기를 했던 거죠. 막상 대본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가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과 만났을 때 정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본은 이해가 되는데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겠었어요. 발연기를 엄청 했죠. 욕도 많이 먹었고요. 저를 뽑아준 감독님들께도 정말 죄송했어요.”

충격. 자신의 연기를 본 그의 심정은 참담했다. 특히 작년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에 출연했을 때 충격이 가장 컸다. 스스로도 용납되지 않는 연기에 포기라는 단어도 떠올렸다.

“정말 저한테 실망을 많이 했어요. 저는 저렇게 연기한 적이 없는데, 그야말로 너무 안 좋은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힘을 내봤어요. 학원이나 남들의 조언이 저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그 때부터 스스로 분석이라는 걸 처음 시작했어요. 드라마 보면서 생각하고, 저 혼자 책도 많이 읽었어요. 누군가가 가르치는 건 저한테 남지 않았어요. ‘미스터 기간제’도 오롯이 혼자 준비했어요. 그러니까 반응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다른 분들에게 배울 것도 있죠. 하지만 그전에 제가 분석하는 힘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게 없으면 남들의 설명이 무의미 해요.”

‘넘버식스’부터 스스로 연기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뿌듯함이 그가 노력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콧소리가 나던 목소리는 아나운서처럼 흡입력이 생겼고, 카메라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깜빡이던 버릇도 고쳤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제가 봐도 실력이 늘은 거예요. 절대적으로 연기를 잘한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건 제가 잘 알죠. 다행인 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연기의 폭도 넓어지고 아는 것도 더 많아지고 싶은 마음이 커요. 공포도 해보고 싶고, 쉽게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다 해보고 싶어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간접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커요.”

20대 중반을 넘어가는 한소은은 ‘미스터 기간제’를 통해 연기자로서 스타트 총소리가 울렸다. 곱상한 이미지에 귀여움과 섹시함을 오고가는 얼굴, 준수한 연기력을 갖춘 한소은은 드라마와 영화 제작진들이 탐 낼만한 재능이다. 곧 개봉하는 ‘양자물리학’에도 출연한 그는 차기작을 검토하고 있다. 차기작 선택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오롯이 연기적 성장이다.

“조금 더 연기적으로 성장하는 것만 생각해요. ‘누가봐도 저 친구는 잘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연기적으로 성공을 해서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신뢰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도연, 공효진 선배처럼 믿음이 가는 배우요. 그 다음은 그렇게 되고 나서 생각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