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드론 산업이 지정학적 갈등과 기술 주권 경쟁 속에서 격변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한국 드론 기업들이 전례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대 드론 제조사인 중국 DJI의 제품 사용을 금지하며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하자, 국내 기업들이 그 빈틈을 메울 수 있는 전략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하원을 통과한 'Countering CCP Drones Act'와 국방수권법(NDAA) 등을 통해 연방 정부와 군사 프로젝트에서 중국산 드론을 배제하고 있다. DJI와 오텔로보틱스 등 중국 업체들이 북미 상업용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해온 상황에서, 이탈한 수요를 대체할 공급처 확보는 당면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경찰, 소방, 농업, 재난 대응 등 공공 및 산업 영역에서 실제 수요가 발생하며, 국내 기업들의 수출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드론 산업도 구조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드론 산업 규모는 약 1조 1000억 원에 달했으며, 2019년 이후 연평균 20%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드론 관련 사업체 수와 사업자 수도 각각 두 배, 열네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약 3.7%에 불과하며, 수입산 드론과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드론의 약 41%가 수입산이며, 비행제어장치(FC), 모터, 배터리 등의 핵심 부품 국산화율은 절반 이하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드론 완성체 5대 프로젝트, 'K-드론 기체공급망 이니셔티브' 등 핵심 부품 자립을 목표로 한 국산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국 거점에 시험장, 인증센터, 스마트 팩토리 등 인프라도 빠르게 확충되며, 제조 역량 제고와 수출 확대를 위한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드론 수출은 전년 대비 62% 증가한 232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정책적 뒷받침과 글로벌 탈중국화 흐름 속에서 국내 드론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교육용 드론 및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 중인 '에이럭스'는 자체 개발한 비행제어장치(FC)를 통해 초경량화와 제조원가 절감을 동시에 달성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에이럭스의 코딩 드론과 배틀 드론은 $80~130대의 가격으로, 미국의 동급 제품 대비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DJI의 저가-고효율 전략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역량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미국 및 일본 기관들과의 거래 확대 가능성이 제기된다.
드론은 이제 전장에서의 감시와 정찰을 넘어, 산업 전반에서 핵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이스라엘 충돌에서는 AI 자율비행, 전자전 대응 기술을 갖춘 군집 드론이 실전 배치되며 전투 효율을 극대화했다. 민간 영역에서도 농업, 건설, 물류, 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도가 급증하고 있으며, 5G와 위성 통신을 기반으로 실시간 데이터 처리와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플랫폼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해 2030년 수십조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산 드론의 낮은 점유율과 기술 자립도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시장 재편과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 국내 기술력의 고도화를 통해 K-드론이 글로벌 산업 내 존재감을 확대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규제 강화는 단기적 위기로도 볼 수 있지만, 한국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전략적 투자와 지속적 기술 내재화를 통해 한국 드론 산업이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한국경제TV 등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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