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AI·로봇 등 미래 신사업에 50조원대 자금을 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로봇 산업의 무게중심이 연구·시연을 넘어 ‘현장 투입’으로 이동하고 있다. 핵심은 휴머노이드다. 사람과 유사한 신체 구조를 가진 휴머노이드는 물류·제조·위험 작업의 노동 공백을 메우는 대안으로 부상했고, 완성차 공장은 그 성능을 검증할 대규모 실증 환경으로 지목된다.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125조원을 투자하고, 이 가운데 약 40%를 AI·로봇 등 미래 신사업에 배정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자동차 기업이 로봇에 집중하는 이유는 기술·생산 구조가 겹치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와 자율주행차·전기차는 모터·배터리·감속기 같은 핵심 하드웨어와 인지·제어 소프트웨어를 공통으로 요구한다. 한쪽에서 축적한 역량이 다른 쪽으로 이전되면서 개발비를 줄이고, 공정 효율화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제조 공정 가운데 자동화 난이도가 높은 ‘의장 공정’이 휴머노이드 도입의 직접적 표적이 된다. 의장 공정은 반복적이면서도 유연성과 정밀성을 요구해 기존 산업용 로봇 적용이 제한적이었고, 자동화율이 15% 수준에 머문 것으로 제시됐다.


기술 측면에서는 ‘피지컬 AI’가 로봇 산업의 확산 속도를 바꾸는 변수로 등장했다. 텍스트 중심의 대형언어모델(LLM)을 넘어 물리적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는 거대행동모델(LAM)이 주목받으면서, 휴머노이드는 정해진 스크립트대로 움직이는 자동기계에서 환경을 인식하고 행동을 선택하는 자율 주체로 진화할 기반을 갖췄다. 다만 현장 적용의 승부처는 인지나 판단이 아니라 ‘구동’이다. 아무리 똑똑해도, 그 판단을 안정적이고 반복 가능한 움직임으로 구현하지 못하면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돈이 몰리는 곳이 액추에이터다. 휴머노이드 1대에 평균 40~50개의 액추에이터가 들어가고, 이 부품이 전체 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휴머노이드 시장이 2025년 15억달러에서 2035년 378억달러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연평균 38%)도 제시됐다. 수요가 늘수록 ‘오늘날의 곡괭이’로 불리는 액추에이터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수혜를 받는 구조다. 테슬라의 양산 계획을 기준으로 2030년에는 휴머노이드용 액추에이터 수요가 약 6,500만 개 추가로 발생할 수 있고, 2034년 산업용 휴머노이드 수요를 686만 대로 가정하면(대당 45개 적용) 총 3억 개 규모까지 추정된다.


부품 전쟁의 다음 축은 정밀 감속기와 로봇 핸드다. 정밀 감속기는 모터의 고속 회전을 저속·고토크로 바꿔 관절의 힘과 정밀도를 좌우한다. 휴머노이드는 무릎·발목 등 핵심 관절에서 제로 백래시(유격 최소화)와 고토크 밀도를 동시에 요구해 고성능 감속기 없이 안정적인 보행과 균형 제어가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로봇 핸드는 더 난도가 높다. 팔이 6~7자유도(DoF)로도 작업이 가능하다면, 손은 좁은 공간에 20개 이상의 자유도를 구현해야 인간의 손을 닮은 조작을 할 수 있다. 크기·무게·원가 부담이 커지고, 촉각 정보 부족과 정밀 제어 문제가 겹치면서 상용화의 마지막 관문으로 남는다.

다만 대규모 투자와 기술 키워드만으로 산업이 ‘자동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휴머노이드가 공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안전 규격, 책임 소재, 데이터 수집과 개인정보·노동 감시 논란, 노사 갈등, 작업 재설계 비용이 동시에 발생한다. 특히 부품 공급망이 특정 기업·국가에 편중되면 비용과 납기가 병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투자 확대가 ‘로봇 도입=일자리 축소’로 단순 번역되는 순간, 사회적 저항은 기술 확산 속도 자체를 늦춘다.

대안은 분명하다. 첫째, 기업은 공정별로 ‘대체’가 아니라 ‘재배치’ 전략을 전제로 로봇 도입 로드맵을 공개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안전·성능·데이터 처리에 대한 로봇 표준과 인증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고, 부품 국산화만이 아니라 다변화된 공급망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의장 공정 등 고강도 작업 인력을 로봇 운영·정비(MRO)·품질 관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재교육 인프라를 붙여야 한다. 로봇이 현장에 안착하는 조건은 ‘기술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사회적 설계’까지 포함한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방송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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