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면 구조 개혁을 통해 공공중심 공급 확대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충분한 물량으로 공급해 집값을 잡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LH가 기존의 택지 판매 구조를 포기할 경우 예상되는 수입감소, 공공임대 확대시 늘어날 관리비용 등 재정적자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LH의 역량 부족에 따른 공급지연, 공공주택의 품질 저하로 인한 공실 문제 등이 지적받으며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서울시 공공주택건설사업 투시도. (자료=서울시)

■ 정부, LH 구조 개혁 선언 "팔지말고 직접 지어라"

3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은 LH의 구조 전환을 예고하며 부동산 시장에 공공 중심 물량 확대를 예고했다. 저렴한 공공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해 집값을 떨어트리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국무회의에서 "LH가 택지를 조성해 민간에 매각하는 구조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덕 국토부장관 후보자도 지난 15일 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해 "구조적이고 판을 바꿀 수 있는 큰 규모의 개혁을 염두에 두면서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임해달라고 주문받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LH가 택지를 조성해 이득을 남기고 민간에 분양한 뒤, 건설사가 이 택지에 다시 마진을 붙여 분양가를 높이는 구조가 집값 상승에 일조한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택지 조성 후 민간에 매각하는 현 LH의 구조를 직접 개발·공급까지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공공주택 비중이 높은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 모델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국무회의에서 발언중인 이재명 대통령.(사진=연합)

■ LH 재정적자·역량 우려, 공공임대 매력저하도 문제

현재 LH는 공공임대로 인해 매년 약 2조원 규모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이러한 손해를 공공택지를 개발 후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며 얻는 수익으로 보전해왔다. LH가 정부의 주문대로 택지를 민간에 팔지 않고, 직접 공공임대·분양주택을 건설해 싸게 공급하는 구조로 전환한다면 그만큼 적자 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기존의 택지 민간 판매 구조는 택지 조성 비용을 빠르게 현금으로 회수 가능했으나, 개발·공급까지 맡는다면 그만큼 자금회수가 지연되며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이자 등 채무비용이 증가한다. 공공임대의 경우 공급물량이 늘어나는만큼 노후 수선비용 등 LH가 지속적으로 부담해야하는 관리비용도 증가해 꾸준히 적자폭 증가에 일조한다.

2024년 기준 LH 부채는 약 160조원, 부채비율은 217.7%로 3년 연속 부채규모가 증가하며 이미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구조 개혁이 진행된다면 부채규모와 증가폭이 모두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LH의 조직 역량도 공급물량 확대에 충분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지금까지 토지 조성과 택지 분양에 주력해온만큼, 직접 설계·건설·임대 운영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실제로 도심 노후 지역을 공공 주도로 개발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의 경우, 7만774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5년째 사업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며 추진속도가 둔화됐다. LH의 인력 부족, 특유의 순환근무에 따른 잦은 인사 이동 등으로 행정처리가 지연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국토부는 최근 LH 정원을 확대했으나 현재 8760명에서 8805명으로 45명 늘어나며 소폭 충원에 그쳤다. 전문 인력 확보와 실행 체계 구축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공공주택의 급격한 공급물량 증가는 주거품질 저하와 공실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LH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6개월 이상 장기 공실 상태인 공공임대주택은 4만9889가구에 달했다. 전체 보유 주택 가운데 5%가 넘는 물량이다.

이는 공급물량 확대를 위해 수도권 외곽·지방 중소도시 등 비인기 입지에 선호도가 낮은 전용면적 31㎡ 이하 초소형 평형 위주로 공급된 결과다. 초소형 평형은 2만4994가구가 공실을 기록하며 전체 장기 공실의 50.1%에 달했다. 반면 전용 51㎡ 이상 중대형 평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요가 몰리며 공실이 6165가구(12.4%)에 그쳤다.

공급물량 확대를 강조하며 양에 집중하다보니 입지, 면적 등 주거매력이 떨어지는 공급이 크게 늘어나며 공실률 확대에 일조한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전경. (사진=LH)

■ "공공만으론 수요 못 잡는다"

전문가들은 LH 구조 개혁의 실효성과 재무악화 등 부작용을 경고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LH는 택지 개발 수익으로 공공임대 사업 적자를 메워왔다"며 "공공성 강화를 위해 자체 개발로 전환한다면 적자 해소방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은 싱가포르보다 국토가 월등히 넓은 만큼, LH가 모든 택지에 직접 개발 후 공급하려면 지금보다 역량이 훨씬 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LH의 역량으로는 정부에서 기대하는 만큼 막대한 공급을 해내기 어렵다" 며 "예산 100조원 정도의 막대한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공급물량이 갑작스럽게 늘어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공공임대를 크게 늘린다 해도 시장의 주거 수요는 공공임대 주택이 아닌 민간 브랜드 신축에 집중돼있다"며 "공공주택이 저렴한 가격과 좋은 입지를 동시에 만족한 채 이뤄지지 못한다면 공공중심 공급 정책으로는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