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 DL건설 대표이사 겸 DL이앤씨 주택사업본부장. (자료=DL이앤씨)
DL이앤씨가 운전수를 바꾼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교체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지난 몇 년 간 두 자릿 수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쾌속질주했으나 고금리와 고물가로 운전 여건이 좋지 못해진 시점. 전문 건설인에게 운전대를 넘기면서 난코스를 돌파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DL건설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동승자까지 생긴 만큼 박상신 신임 대표 내정자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2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가 내달 이사회를 열고 박상신 주택사업본부장 겸 DL건설 대표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박 본부장은 지난 1일 DL건설 임시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로 선임된 이후 DL이앤씨 대표까지 겸직하게 됐다.
박 본부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5년 DL건설의 전신인 삼호에 입사했다. 이후 삼호 경영혁신본부장을 역임했으며 고려개발과 대림산업(현 DL이앤씨), 진흥기업에서 대표이사를 지냈다. 40년의 세월 동안 건설업에 몸을 담은 전문 건설인이다.
박 본부장은 지난 2019년에 주택사업본부장과 대림산업 대표이사를 겸직하며 회사의 사상 첫 영입이익 1조원이라는 기록을 이끌었다. 건설업계 전체로 보면 현대건설과 GS건설에 이어 세 번째 '영업익 1조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 DL이앤씨, 출범 이후 첫 전문건설인 대표 체제 전환
DL이앤씨가 건설사 출신 대표를 세운 것은 지난 2021년 대림산업의 지주회사 전환과 건설사업부문의 인적분할로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DL이앤씨는 대림산업 시절이었던 2018년 3월부터 2020년 7월까지 박상신 주택사업본부장에게 대표이사직을 함께 맡긴 과거가 있다. 이후 LG전자 출신인 배원복 경영지원본부장을 새 대표로 선임하면서 '비(非)건설인' 대표 체제로 전환을 시작했다.
이어 2021년 인적분할과 함께 마창민 LG전자 MC사업본부 상품전략그룹 전무를 영입하면서 새 대표로 선임했다. DL이앤씨 출범 첫해인 2021년에 마 전 대표는 영업이익률 12.5%를 기록하면서 출발선을 성공적으로 끊었다.
마 전 대표 체제에서 DL이앤씨는 안정적인 재무구조의 초석을 쌓았다. 순현금 기조는 2021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부채비율은 2021년 93.5%에서 그 이듬해에 91.3%로 더 낮아지기도 했다. 다수의 건설사가 부동산 호황기에 무리한 사업 확장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마 전 대표는 지난해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3312억원에 그쳤다. DL이앤씨 출범 첫해 영업이익이 9513억원이었던 걸 고려하면 3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이와 더불어 잇단 중대재해 사고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 증인으로 2년 연속 출석하기도 했다.
마 전 대표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재선임에 성공했으나 8일만에 사임했다. DL이앤씨는 서영재 LG전자 전무를 영입하면서 새 대표로 낙점했으나 서 전무도 대표 취임 두 달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DL이앤씨 지난 4년 간 매출 및 영업이익. 2020년은 분할 전 대림산업 실적. (자료=DL이앤씨, 그래픽=뷰어스)
■ 주택 전문가·위기 관리 경험치도 우수…박상신 신임 대표 과제는?
박상신 주택사업본부장의 과제는 주택사업에서의 지속적인 먹거리 발굴과 신사업 역량 강화다. 더불어 포트폴리오 다각화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DL이앤씨는 지난 2022년 정비사업 신규 수주액 4조8943억원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까지 3817억원의 수주액을 올리는데 그치고 있다. 선별 수주 기조 강화로 경쟁은 최소화하면서 양질의 사업장을 따내는데 집중하면서다.
박 본부장은 올해 하반기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는 1조7000억원 규모 한남5구역 재개발의 성공적인 수주를 이끄는데 힘을 싣는다.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신성장 동력 발굴 및 강화, 포트폴리오 다각화라는 숙제도 풀어야 한다. 소형모듈원전(SMR)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 역량 확보에도 집중한다.
이와 함께 토목과 플랜트 수주 비중을 높이면서 포트폴리오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DL이앤씨는 연초 토목과 플랜트 수주액 목표치를 각각 3조원, 2조원으로 제시했다.
원가율 개선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주택사업 외에 다른 사업 영역에서도 매출을 늘리겠다는 게 DL이앤씨의 계획이다. 실적 반등 기대감도 이 같은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김선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플랜트 부문은 2분기 도급 증액 외 신규 수주가 없어 플랜트 수주가 다소 더딘 상황"이라면서 "2년 연속 3조원대 수주 확보가 돼야 내년 이후 플랜트 부문 주도의 실적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DL이앤씨는 하반기 주택 원가율이 나아질 수 있을지 여부와 플랜트 매출액의 증가 속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박 본부장은 지난 3월 DL이앤씨가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 DL건설의 대표도 겸직하고 있어 양 사의 유기적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에도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위기 관리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다. 박 본부장은 삼호 임원으로 재직 당시 회사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졸업에 일조했다. 삼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방 분양사업의 실패로 2009년 1월부터 워크아웃에 돌입했으며 2016년에 졸업했다. 박 본부장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삼호 임원으로 재직했으며 2014년부터는 경영혁신본부장으로 경영 정상화를 이끌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박상신 본부장은 대림산업 재직 당시 사상 첫 영업익 1조원을 달성하며 리더십을 인정 받고 있다"면서 "현재 건설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극복과 신성장 동력 육성을 책임질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어 "추후 소집되는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