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대형 '지반침하'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지하 구조물 공사와 지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경찰은 사고 지점 인근의 지하철 9호선 연장 사업과 세종~포천 고속도로 공사와의 연관성을 수사 중이며, 참여 시공사들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과거 석촌호수와 용산역 인근에서의 유사 사고도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추진 중인 용산국제업무지구는 과거 지반침하가 발생했던 지역과 인접해 있어, 개발 전 안전성 검증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보통은 '싱크홀'로 부르고 있지만, '지반침하' 범주 안에 석회암층이 내려앉는 '싱크홀'과 지하 매설구조물 등의 노후화나 주변 굴착현장 등으로 인한 인위적인 '지반함몰(땅꺼짐)'로 분류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지난 24일 오후 6시29분경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의 한 도로에서 직경 약 20m, 깊이 수 미터에 달하는 대형 지반침하 현상이 발생한 CCTV 모습. (사진=KBS 갈무리)


■ 대형 지반침하, 9호선 연장 구간·고속도로 터널 공사 등 조사

사고는 지난 24일 오후 6시29분경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의 한 도로에서 직경 약 20m, 깊이 수 미터에 달하는 대형 지반침하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지나가던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씨(33)가 이곳에 빠져 매몰됐고, 약 17시간 만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또 다른 시민은 차량으로 지나가다 가까스로 싱크홀에 빠지지 않았고 경상을 입었다.

공개된 CCTV 영상에서도 보면 흰색 승합차가 도로에 대형 구멍이 생기는 시점에 지나가며 차량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뒤이어 오던 오토바이는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사고 지점은 서울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공사 구간과 세종~포천 고속도로 고덕터널 공사 구간이 겹치는 곳이다. 이에 따라 경찰과 서울시, 강동구는 해당 지하 공사가 지반 붕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집중 조사 중이다. 경찰은 현재 노후 상수도관 외에도, 굴착 방식, 지하수 처리, 구조물 하중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에는 한신공영, 대우건설, 롯데건설, 태영건설, 두산건설, KCC건설, 도화엔지니어링 등 다수 건설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공사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책임 소재를 확인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를 구성해 운영한다고 28일 밝혔다. 사조위는 도시철도 9호선 공사와 관련 없는 외부 전문가 12인으로 구성되며, 오는 31일부터 두 달간 정밀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설계도서 검토와 관계자 청문 등을 거쳐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 반복되는 '지반침하' 사고…과거 석촌호수·용산역 사례 재조명

이번 사고는 과거에도 지하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지반침하 사례들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 지반침하(왼쪽), 2015년 용산역 인근 도로함몰. (사진=SBS, YTN 방송 갈무리)

대표적인 사례는 과거 2014년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발생한 지반침하다. 이 사고는 지하철 9호선 공사 도중 발생했으며, 당시 시공사였던 삼성물산이 설계 대비 과도한 굴착(14% 초과)과 보강공사 부실 등의 문제로 지목됐다. 서울시는 사고 이후 해당 구간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복구 조치를 진행했다.

또한 2015년 2월에는 용산역 인근 푸르지오써밋 신축 공사장 인근 인도에서 도로함몰 현상이 발생해 시민 2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해당 공사 현장의 시공사는 대우건설이었으며, 서울시는 흙막이 공사의 시공 미흡과 지하수 유실로 인한 지반 약화 가능성을 조사해 공사를 중단시킨 뒤, 인근 5곳에서 추가 지반 위험 지역을 확인했다.

이처럼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지반침하 사고가 발생하면서, 주변 공사로 인한 연관성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 국토부 통계, 5년간 1127건 지반침하…서울만 100건 이상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국내에서 공식 분류된 지반침하 사고는 총 1127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서울은 109건이 발생해 전국 최다였다.

특히 서울시 내 싱크홀 발생 건수는 2021년 11건에서 2022년 20건, 2023년 22건으로 지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발생 원인 중 다수는 지하 인프라 노후화, 개발사업 중 지반 굴착과 지하수 유출로 인한 침하로 분석된다.

국토부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면적 1㎡ 이상 또는 깊이 1m 이상 지반침하 사고에 대해 공식 집계를 진행 중이다. 중대 사고에 대해선 지자체와 함께 정밀 조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 용산 개발, 또 다른 '지반침하' 위험 가능성은?

이번 사고의 여파는 최근 추진 중인 대규모 개발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서울시가 본격화한 ‘용산국제업무지구 복합개발 사업’은 과거 주변에서 지반침하 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용산역 인근 철도차량기지 부지를 업무·상업용도로 재개발하는 이 프로젝트는 최고 100층 규모의 건물과 대규모 지하 구조물 설치가 예정돼 있고, 향후 민간 건설사들의 참여도 예상된다. 서울시는 한국전력, SH공사, 코레일 등과 함께 개발 협약을 체결했고 올해 하반기 실시계획 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지역이 2015년 지반침하가 발생했던 용산역 사고 지점과 불과 수백미터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당시 사고 원인으로 지반 약화와 시공 미흡이 복합적으로 지적된 만큼, 같은 지질 구조에서 유사한 방식의 개발이 반복될 경우 안전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 구역 (사진=서울시)


특히 용산 일대는 과거 하천이 흐르던 지역이자 철도 차량기지가 자리했던 곳으로, 복합적인 지반 조건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로 인해 대규모 굴착이 수반되는 개발 과정에서 지반침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개발을 추진하기에 앞서 보다 정밀한 지반조사와 구조물 영향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최근 명일동 사고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며, 도심 개발의 전제 조건으로 ‘지하 안전성’ 확보가 중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지반침하 예방, 설계 단계·시공 때 관련 조사 지속해야”

전문가들은 지반침하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초기 단계뿐 아니라 관련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지반공학회 한 연구위원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는 조사가 이뤄지고 있어서 답변을 할 수 없다”면서, “원론적으로는 공사 초기 단계부터 지반 특성에 따라서 설계하고 시공을 하고, 공사가 이뤄지면 보통 사전에 예방을 위한 지하레이더, 지반 침하 감지 센서 등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며 “초기 설계 단계와 시공 때도 관련 모니터링과 조사를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표적인 대응 기술로는 고압 그라우팅 등 지반 보강 공법, 지하 레이더(GPR)를 활용한 사전 지반 진단, 지반 침하 감지 센서를 통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싱크홀'이라고 보통 말하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싱크홀'은 석회암층이 내려앉는 것을 말하고, 매설구조물 노후화나 주변 굴착 공사 등으로 인해 도로가 내려앉는 현상은 '지반함몰'이나 '땅꺼짐'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지반침하 예방을 위한 기술 개발과 도입도 진행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터널환경학회에 따르면, ‘지반침하 예측 및 검증용 원심모형 실험장치 및 방법’을 공동 개발했으며, 이 기술은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지반 변화와 지하수 흐름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싱크홀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향후 대형 개발사업이나 도시철도 공사 현장 등에서 실질적인 안전 관리 도구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