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 창업주 김상열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왼쪽)과 장남 김대헌 기획총괄 사장(오른쪽 위), HMM 선박. (사진=호반그룹, HMM)
호반그룹이 대한항공에 이어 HMM까지 노리며 육·해·공 동시 진출 야심을 본격화했다. 정권교체를 기회 삼아 해운업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천문학적 인수자금과 해운업 전문성 부족으로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정권교체 속 정치적 변수 기회 삼나
호반그룹의 HMM 관심이 급부상한 배경에는 정치적 변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부산 유세에서 “HMM과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민영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산업은행 이전은 어렵지만, 해수부와 HMM만큼은 옮기겠다”며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제시했다. 더구나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의 임기가 6월에 만료된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 새로운 산은 회장이 선임되면 HMM 매각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호반그룹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에서는 호반이 정권교체를 기회 삼아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호반은 최근 한진칼과 LS 지분을 동시에 확보하며 정치적 변화를 틈탄 전략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 호반, 하림 컨소시엄의 ‘마지막 돈줄’ 역할
호반그룹의 HMM 관심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앞서 지난 2023년 HMM 본입찰에서 호반그룹이 하림그룹의 ‘마지막 자금줄’로 나섰던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하림그룹-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 6조4000억원을 제시하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자금 조달 문제로 결국 매각이 무산됐다.
핵심은 호반이 하림의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팬오션 발행 5000억원 규모 영구채 매입을 검토했다는 점이다. 하림은 자기자본 3조원에 인수금융을 더해 최대 6조5000억원까지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호반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였다.
당시 하림이 호반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호반 측에서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매각이 무산됐는데, 이때의 경험이 호반의 독자적인 HMM 인수 검토로 이어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더욱이 지난 2022년 폴라리스쉬핑 인수를 추진했다가 사모펀드와의 갈등으로 포기한 경험도 있기 때문에 해운업 진출에 대한 의지가 지속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HMM 선박. (사진=HMM)
■ 12조원 딜의 현실적 벽, ‘육해공’ 통합의 야심…“해운 전문성 전무” 지적
하지만 호반의 HMM 인수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천문학적인 인수 금액이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71.69%)의 시가총액 기준 가치는 12조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23년 하림 컨소시엄이 제시한 6조4000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호반그룹의 현금 보유액은 조 단위에 달하지만, 12조원을 단독으로 조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합쳐도 2조6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업계에서는 “HMM 덩치가 너무 커 통매각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해운업의 특수성이다. HMM은 세계 8위 컨테이너 선사로 글로벌 네트워크와 운항 노하우가 핵심 경쟁력이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해운 운임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선박 발주와 운항 스케줄 조정 등 복잡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건설업과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며 “글로벌 화주들과의 관계를 비롯해 선박 관리, 항만 운영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이 필요한데 이런 경험이 전무한 곳에서 인수에 나선다면 국가 경쟁력에 큰 손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반그룹이 구상하는 육·해·공 통합 물류 제국은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건설, 해운, 항공은 각각 완전히 다른 사업 영역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유만으로는 시너지를 창출하기 어렵다. 업계에선 이런 접근이 3남매 승계를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HMM을 둘러싼 논란은 국가 기간산업의 안정성과 자본의 논리 간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성 없는 자본이 단순히 수익성만을 추구할 경우 HMM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 업계에선 “HMM은 단순한 수익 창출 수단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핵심 인프라”라며 “전문성과 안정성을 갖춘 경영진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