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아파트들 모습. (사진=손기호 기자)
서울을 중심으로 전세 시장의 구조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전세대출 제한 조치 이후 ‘전세 대신 월세’로의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금융·부동산 업계에서는 하반기 추가 금융 규제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세입자 주거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9일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소폭 감소한 반면 월세 물량은 되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6·27 부동산 대책 이후 열흘 사이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78건 줄어든 반면, 월세는 411건 늘었다. 전세 수요가 급감하면서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이는 방식으로 조건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는 입주 초기부터 절반 가까운 가구가 전세가 아닌 반전세나 월세 조건으로 시장에 나왔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조건부 전세대출이 불가능해지면서 계약을 포기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집주인들도 잔금 마련을 위해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수요는 많은데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
전세거래 지표도 급변하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6·27 대책 발표 이후 전세거래지수는 30.2로 급락했다. 반면 전세수급지수는 144.9로 여전히 전세를 원하는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황을 보여준다.
전세거래지수는 세입자들의 실제 전세 계약 체결이 얼마나 활발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는 수치가 낮을수록 시장에서의 거래가 부진하다는 뜻인데, 30.2이면 기준선인 100을 한참 밑도는 수치다. 전세 거래가 극도로 위축된 상태임을 의미한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을 말하는데, 현재처럼 140대 이상의 수치는 수요가 상당히 높은 상태란 뜻이다. 이처럼 전세를 원하는 수요는 많은데도 대출 규제로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 역설적인 시장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미 유주택자의 전세금 반환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했고, 보증 비율도 90%에서 80%로 낮췄다. 고액 전세를 선호하던 수요자들도 이젠 월세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수도권 중심 전세대출 규제 ‘2차 카드’ 나오나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세대출 규제 강화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전세담보대출 한도를 3억원으로 제한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신규 또는 갱신 전세대출에도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전해졌다.
핵심은 전세대출도 일반 주택담보대출처럼 DSR 40%를 넘길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만기 연장 시에도 이 비율을 초과하면 즉시 상환해야 할 판이다. 특히 DSR 계산 시 적용되는 스트레스 금리도 현재보다 1.5%포인트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전세대출에 대한 추가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지고 중산층 이하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진입장벽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전세가격이 매매 가격을 밀어올리는 부작용은 있으나 이미 제도화된 전세대출을 건드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며 “3억원 초과 제한이나 DSR 40% 적용은 자칫 서민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전세대출이 막히면 세입자들은 대출이자보다 높은 월세를 감당하며 종잣돈을 모으기 어려워지고 결국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진다”며 “이미 전세제도를 설계하고 확대한 국가가 그 책임을 다시 서민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