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이 3186억원 규모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을 철회했다. 지난 6월 발표 이후 이어진 주주 반발과 시장 급락, 정부의 자사주 규제 강화 기조 등이 누적되면서 EB 구조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4일 태광산업은 이사회에서 EB 발행 계획을 백지화하면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주주가치를 고려할 때 자사주 기반 EB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 또한 고려 대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 주주 활동주의·정책 기조 변화…EB에 대한 외부 압력 축적

태광산업의 EB 논란은 6월 발표 직후부터 시작됐다. 회사는 EB 발행을 통해 애경산업 인수 등 신사업 재원 2000억원을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자사주 전량을 기초자산으로 사용한다는 구조가 주주가치 훼손 논란으로 이어졌다.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EB를 통해 자사주가 시장에 풀릴 경우 주주 희석이 발생한다며 법원에 가처분을 제기했다. 기각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시장에서는 자사주 활용 EB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오히려 더 커졌다. EB 추진 이후 태광산업의 주가는 5개월간 하락세를 이어갔고자금 조달 비용 역시 상승했다.

여기에 정부·여당의 자사주 규제 강화 기조가 더해졌다. 정부는 상법 개정안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의결권 제한 등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고 이는 자사주를 발행·방출해 현금을 확보하는 EB 구조와 정책적으로 충돌하는 방향이다.

정책 당국의 시선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태광산업은 최근 국세청 서울청 조사4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회사는 “정기 조사”라고 설명했지만 조사4국의 성격상 지배구조·재무 투명성에 대한 감독이 강화된 시점임을 시장은 주목했다.

정부 정책 변화와 맞물려 태광산업의 EB는 특별한 감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회사 입장에서도 이를 추진하기엔 위험이 커졌다.

■ 동시다발 투자로 커진 현금 수요…전통적 조달 방식으로 회귀

태광산업이 EB 발행을 추진했던 내부 요인도 분명하다. 기존 석유화학·섬유 사업의 장기 부진으로 현금창출력이 약화된 가운데 신사업 확대와 대규모 M&A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현금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이었다. 2018년 3조원이던 매출이 5년 새 2조 2122억원으로 줄었고 2022년부터 적자로 전환해 2024년 3분기 누적 손식은 2891억원에 달했다.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 남대문 메리어트 호텔 매입, 조선·에너지 프로젝트 등 여러 투자 건을 병행하고 있어 현금 수요가 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장 환경은 이미 EB 발행을 용인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회사 내부에서도 “현금은 필요하지만 EB는 적기 구조가 아니다”라는 결론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EB 철회 이후에도 신사업 확대는 지속하며 필요한 자금은 외부 차입, 대체 금융 조달,계열사 유동성 활용 등 전통적 수단으로 확보할 방침이다. 계열사 흥국생명이 본사와 12개 지점 건물 매각으로 최대 1조원 규모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점도 그룹 차원의 투자 여력을 높이는 변수다. 회사는

태광산업의 EB 철회는 단순히 한 기업의 조달 계획 변경에 그치지 않는다. 자사주 규제 강화, 주주활동주의 확산, 재무 건전성에 대한 투자자 감시 강화가 결합한 환경에서 자사주 활용 금융구조는 더 이상 안전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신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