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인 압구정 2구역 시공사 선정전이 현대건설 단독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마감된 첫 입찰에서 현대건설이 유일하게 응찰하며 경쟁 입찰 성립 요건인 2개사 이상 참여가 충족되지 않아 유찰됐고, 조합은 12일 2차 입찰 재공고를 냈다. 규정상 두 차례 연속 경쟁 미성립 시 법적으로 수의계약 전환이 가능하다.
다만 사업지 일부에 과거 시공사 명의로 남아 있는 대지 지분 소유권 정리 문제가 남아 있어서 본계약 전 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또 다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
당초 압구정 2구역 사업은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맞대결이 예상됐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조합이 제시한 대안설계 범위 제한과 금융 조건 제약 등을 이유로 "준비한 제안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며 불참을 공식화했다. 조합이 설계와 금융 조건을 통해 특정 사업 방향을 명확히 설정한 것이 삼성물산의 전략과 맞지 않았던 탓이다. 이로 인해 현대건설이 단독 응찰하는 구도가 형성됐고 수의계약 체결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조합은 오는 20일 현장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여기에 현대건설만 참석하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하는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최종 시공사 확정은 9월27일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의계약이 가능해도 조합원 총회 승인과 조건 협의가 남았다"며 "조합이 협상 주도권을 확보해 공사비, 안전, 금융 조건에서 최대치를 끌어내려 할 것"이라고 했다.
■ 강남 핵심지의 초대형 재건축…현대건설 수주하면 안정적 '캐시플로'
압구정 2구역은 1982년 준공된 신현대(9·11·12차) 1924가구를 최고 65층, 2571가구로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총공사비는 3.3㎡당 1150만 원, 전체 2조7488억원 규모에 달한다. 한강 조망과 강남 생활권을 아우르는 입지다. 강남권 재건축 중에서도 상징성과 파급력이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압구정 일대는 총 5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지정돼 절차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2구역의 시공사 선정이 확정되면 나머지 구역에도 사업 추진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건설이 2조원이 넘는 압구정 2구역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는 초고층·대규모 재건축 실적 확보로 '힐스테이트'의 브랜드 고급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이는 향후 강남·서초·송파 등 다른 고급 주거지 재건축 수주전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다. 또한 2조7000억원이 넘는 장기 프로젝트 수익이 국내 주택, 건축 부문의 안정적인 캐시플로를 형성할 수 있다.
현대건설의 '압구정 현대' 상징성과 계승 가치를 조명한 헤리티지 북을 발간해 홍보에 나서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 현대·삼성 강남 수주전과 연쇄 파급…과거 대지지분 관련 변수도 있어
압구정 2구역은 지난 10여년간 강남 재건축을 양분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경쟁 구도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와 개포주공1단지, 한신4지구 등을, 삼성물산은 반포3주구(래미안 원베일리), 잠실주공5단지 등을 확보하며 강남 고급 주거시장에서 팽팽히 맞서왔다.
이번에 현대건설이 압구정을 차지하면 브랜드 인지도와 상징성이 크게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는 대치동 미도·선경·우성, 송파 잠실주공, 서초 한신 등 강남권 주요 단지의 향후 시공사 선정 과정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합 입장에선 압구정 아파트 시공사라는 상징성과 검증된 대규모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가진 현대건설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최근 압구정2구역에서 과거 현대건설 등 시공사 명의의 대지 지분이 일부 남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소유권 정리와 관련한 과제도 새롭게 떠올랐다. 서울시와 정비 조합, 현대건설 모두 행정착오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재건축 과정에서 지분을 조합으로 환원해 신속히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분 환원 절차와 관련 소송이나 조합원 재산권 갈등 등은 압구정2구역 재건축 일정과 사업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로도 주목받고 있다.
현대건설은 "50년 전 직접 지었던 우리 아파트를 다시 재건축한다는 상징성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차별화된 설계와 금융 혜택, 현대백화점과의 협업 등 압구정만의 프리미엄 단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현대건설은 이번 사업을 위해 하나은행·증권사 등 13개 금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영국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 설계팀과 협업하는 등 프리미엄 단지를 내세우고 있다. 오는 20일 현장설명회와 9월27일 조합원 총회가 향후 강남 재건축 시장의 왕좌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