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DX 조감도 (사진=HD현대)

1년 6개월 넘게 표류해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방식이 결국 경쟁입찰로 결론 났다. 방위사업청은 22일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 방식을 경쟁입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당초 유력하게 검토되던 수의계약 대신 경쟁 방식을 택하면서 그간 이어진 공정성 논란과 정책 부담이 최종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쟁입찰은 두 기업의 보안·설계 능력을 정면 비교하게 되는데 한화오션이 상대적으로 안정적 평가를 받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 7.8조원 국책사업…해군 전력·함정 산업 주도권 건 승부

KDDX는 총사업비 약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t급 미니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대형 국책 방산 사업이다. 선체와 전투체계, 이지스급 통합 운용 기술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구현하는 첫 구축함이라는 점에서 해군 전력은 물론 국내 함정 산업의 기술 주도권이 걸린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번 KDDX 사업방식 결정의 분수령은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었다. 대통령은 최근 방산 정책 관련 회의에서 “국가 핵심 전력 사업에서는 기술력 못지않게 보안과 절차적 공정성이 중요하다”며 “과거의 문제가 있었던 기업이라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정 기업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방산업계에서는 KDDX 사업을 둘러싼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전력을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대통령 발언 이후 KDDX 사업은 ‘보안 이력이 있는 기업에 대형 국책 방산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맡길 수 있는가’라는 정책적 질문으로 확장됐다. 방사청이 그동안 납기와 관례를 이유로 수의계약을 검토해왔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사업 방식 판단의 기준 자체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 2018년 기밀 유출부터 2024년 행정지도까지…보안·공정성 논란

KDDX 사업에서 HD현대중공업의 보안 논란은 2018년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HD현대중공업 직원이 해군본부에서 KDDX 관련 군사기밀을 무단으로 반출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관련 해군 장교들의 혐의가 먼저 인정됐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 직원에 대한 재판은 장기간 이어지며 결론이 늦어졌다.

방사청은 그 사이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을 변경했다. 기존에는 ‘군사안보지원사 처분 통보 시 감점 가능’이었으나 이후 ‘기소유예 또는 형벌 확정 시 감점’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이로 인해 재판이 진행 중이던 기간 동안 HD현대중공업은 입찰 과정에서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2022년 11월, HD현대중공업 관계자 9명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법원은 “기밀을 취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해당 기밀이 입찰 평가에 실제로 활용됐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 논리는 이후 방사청의 대응에도 영향을 미쳤다.

■ 내년 말 계약 목표…경쟁입찰 변수는 여전

방사청은 판결 이후에도 즉각적인 제재에 나서지 않았다. 판결문 열람이 제한됐다는 이유로 후속 조치를 미뤘고, 결국 2023년 10월 판결문을 입수한 뒤 2024년 2월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 ‘행정지도’ 조치를 결정했다.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입찰참가 제한이나 중징계는 하지 않았다.

방사청은 내년 말까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1년 가까이 지연된 만큼 일정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쟁입찰 과정에서 또 다른 이의 제기나 법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