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대산 공장 (사진=롯데케미칼)

2025년 석유화학 산업은 불황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상수로 굳어지고 수요 둔화와 고정비 부담이 겹치면서 과잉은 구조적 문제로 확정됐다.

국내 주요 나프타분해설비(NCC) 평균 가동률은 70% 안팎까지 떨어졌다.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85%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돌릴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게 됐다. 더 이상 기다림을 포기하고 새 판을 짜기 시작한 것이다.

■ 16개사 사업 재편안 제출…집단 감산의 시작

최근 여수·대산·울산 등 국내 3대 석유화학 산업단지에 생산시설을 둔 16개 기업이 모두 사업 재편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NCC와 PDH 설비를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자율적으로 감축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들 계획이 이행될 경우 업계가 합의한 연간 270만~370만t 규모의 설비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일 기업이 아닌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이 공식화된 이후 산업통상부는 사업 재편안 승인 기업에 대해 금융·세제·R&D·규제 완화 등을 묶은 지원 패키지를 제공할 방침이다.

■ 롯데·LG·중견사까지…‘확장 전략’의 종료

롯데케미칼과 HD현대의 대산 1호 프로젝트는 사업 재편안의 가장 상징이 되는 사례다.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을 물적 분할한 뒤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NCC 설비를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가 촉구해온 석유화학 구조조정 정책이 처음으로 실현된 후 흐름이 급격히 빨라졌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비핵심 자산 매각과 해외 자회사 정리에 속도를 냈다. 파키스탄·인도네시아 법인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약 1조7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고, 수처리 분리막 사업도 매각했다. 에셋 라이트 전략을 통해 본업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LG화학 역시 워터솔루션 사업을 매각하며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기초소재 부문은 신규 투자보다 운영 효율과 탄소 대응 중심으로 재정렬됐다. 석유화학 단독 성장 모델의 한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중견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여천NCC는 외부 컨설팅을 통해 구조 혁신에 착수했고, 효성화학은 베트남 법인 부진과 차입 부담 속에 사업 재편과 자산 매각을 검토 중이다. 태광산업은 일부 프로필렌·섬유 설비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투자를 재배치했다.

■ ‘증설’ 사라진 자리…통폐합’·‘선택과 집중으로 변화

2025년 석유화학 업계에서 ‘증설’과 ‘확대’라는 단어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가동률, 현금흐름, 통폐합, 선택과 집중이 공통 언어가 됐다. 과잉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숫자로 확인됐고, 구조조정은 계획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 됐다. 석유화학 산업의 봄은 오지 않았다. 봄을 기다리는 대신 판을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