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2026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6년 새해, 정부는 ‘대도약’을 국정 기조로 내세웠다. 신년사에서 ‘성장’은 수십 차례 언급되며 정책 방향의 중심에 놓였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수주잔고는 늘었고 일부 업종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기업이 마주한 경영 환경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다.
■ 트럼프 2기 리스크의 현실화
2025년이 트럼프 리스크를 예측하는 해였다면 2026년은 그 영향이 실제 정책으로 산업 현장에 작동하는 시기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이후 동맹국 방위비 분담 확대, 미국산 무기 구매 압박, 자국 제조업 보호를 핵심 기조로 분명히 하고 있다. 2026년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 부과나 보조금 정책이 다시 한 번 변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등 주요 방산기업들은 수주잔고를 빠르게 늘렸지만 향후 계약 조건과 정치적 변수에 따라 수익성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철강·화학 업계 역시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미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보조금 차별까지 겹칠 경우 부담은 구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 고환율·고금리…달러 강세 구조 고착화
고환율은 2026년 산업계가 직면한 단기 변수가 아니라 중장기 경영 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환율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이유는 글로벌 자본 흐름에 있다. 최근 한미 관세·투자 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은 향후 10년간 최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했고, 선박·방산·에너지 분야에서 추가로 10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달러 수요가 단기간에 줄어들기 어렵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변화와 무관하게 달러 강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산업계는 환율 하락을 전제로 한 단기 대응보다 고환율을 상수로 놓고 비용 구조와 투자 전략을 재설계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원·달러 환율은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장치산업 전반에는 비용 부담과 재무 리스크를 동시에 키운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정유 업계는 원가 압박이 커지고, 고금리 환경이 맞물리면서 차입금 부담이 실적을 잠식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 지정학 리스크의 상시화…끝나지 않는 전쟁
중동 지역의 긴장은 2026년에도 상수에 가깝다. 정유업계는 유가 변동성 확대로 단기 마진 기회가 생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비용으로 누적된다. 조선업계 역시 LNG 운반선과 군함 수요 확대라는 호재가 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납기 관리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방산업계는 지정학 리스크 확대의 수혜 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외교·정치적 부담과 수출 통제 리스크를 함께 안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고,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은 중동 내 동맹 구도를 재편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 긴장 역시 고조되는 흐름이다. 여기에 예멘을 둘러싼 중동 불안은 홍해와 인도양 항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는 캄보디아와 태국 간 국경 분쟁이 수년 만에 가장 불안정한 국면으로 평가된다. 지정학 리스크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반의 비용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 구조적 공급과잉…회복 아닌 퇴출의 문제
석유화학과 철강 업계가 직면한 문제는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공급과잉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증설은 이미 수요를 크게 웃돌고 있으며, 2026년에도 수급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여수·대산·울산 등 국내 3대 석유화학 산업단지에 생산시설을 둔 16개 기업 모두가 사업 재편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6년 산업기상도 조사’에서도 석유화학은 철강, 건설, 기계와 함께 ‘흐림’으로 분류됐다. 석유화학 업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저유가에 따른 나프타 가격 하락 영향으로 수출이 전년 대비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 인력·생산능력 병목 현상…수주잔고의 그늘
방산·조선업계를 중심으로 숙련 인력 부족 문제가 본격적인 리스크로 부상했다. 대형 조선사들은 외국인 노동자 채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품질과 생산성 관리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방산업계 역시 대규모 수주를 소화하기 위해 협력사까지 포함한 생산 능력 확충이 필수적이다. 납기 지연은 곧바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기업들의 부담은 크다.
2026년 산업계의 최대 리스크는 새로운 위기의 등장보다 이미 존재하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수주와 실적이 좋아도 정치·환율·금융·공급망·인력 리스크를 통제하지 못하면 성장은 지속되기 어렵다. 올해 중요한 것은 ‘확장의 속도’보다 버틸 수 있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