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에 쌓인 철강제품 (사진=연합뉴스)

■ 많이 만들어도 부족하던 산업에서 공급과잉으로

한때 철강은 많이 만들어도 부족했다. 수요가 생산을 앞질러 정부는 설비를 늘리고 기업을 키우는 철강공업육성법을 제정해 철강업 육성을 지원했다. 그러나 40년이 흐른 지금, 철강을 둘러싼 환경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생산 능력은 수요를 훌쩍 넘겼고, 과잉 설비와 저가 경쟁이 산업 전반의 수익성을 잠식하고 있다. 국회가 지난해 11월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K-스틸법)’은 이름은 ‘지원법’이지만, 법이 지향하는 방향은 보호가 아니라 관리다.

이번 철강지원법은 과거처럼 생산 확대를 독려하지 않는다. 대신 감산과 구조조정, 질서 있는 산업 재편을 국가의 역할로 명문화했다. 40년 만에 돌아온 철강지원법의 성격은 180도 달라졌다.

■ K-스틸법, 감산 합법화·공동행위 특례…질서 있는 축소

K-스틸법의 통과에 따라 국무총리실 소속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가 신설되고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이 5년 단위 기본계획과 연간 실행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 시행하게 된다.

법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항은 제38조(공동행위에 관한 특례)다. 그간 개별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감산에 나설 경우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결단하지 못했다. K-스틸법은 업계가 합의 하에 감산과 설비 조정을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제37조(기업결합 심사 특례) 역시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는 장치다. 사업재편 목적의 기업결합에 대해 심사 기간을 기존 최대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해, 한계 기업의 정리와 인수·합병(M&A)을 앞당길 수 있도록 했다. 만성적 공급 과잉 상태인 철근 시장 재편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설비 감축·저탄소 전환·철근 구조조정…지원조건은 전환

K-스틸법이 규정한 지원의 조건은 명확하다. 설비 합리화와 감축, 저탄소 전환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기존 설비 구조를 유지한 채 지원을 받기는 어렵다. 대표적인 조정 대상 품목으로는 철근이 지목된다. 건설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국내 철근 생산능력은 연간 약 1200만톤에 달한다. 지난해 가동률은 50%대까지 떨어졌다.

법안에는 외국산 저가 철강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제29조(철강산업의 보호 등),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확대에 필수적인 전력·수소망 구축을 국가 기본계획에 반영하도록 한 제28조(국가 전력망 등의 설치·확충)도 담겼다.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산업 체질 개선까지 염두에 둔 조항들이다.

■ 중소 전기로 부담 등 과제 남아

K-스틸법은 철강산업을 살리기 위한 안전망이자, 산업 재편을 가속하는 장치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시행령과 정책의 무게 중심이 중장기 탄소중립 투자에 쏠려 있어, 당장의 가동 위기를 넘길 단기 처방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업계가 요구해온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나 직접 보조금은 법에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중소 전기로 업체와 독립 제강사일수록 감산과 설비 전환, 투자 재편을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K-스틸법은 철강의 질서 있는 축소와 선택적 성장을 제도화했다. 버티면 돕는 구조가 아니라, 바꾸는 기업만 살아남는 구조다. 이 법이 철강산업 회복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제도적 틀로 남을지는 시행령과 후속 정책에 달려 있다. 공급과잉 산업을 다루는 국가의 방식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철강산업은 그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