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CEO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구조조정 전제로 한 ‘조건부 지원’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은 제도화 단계에 들어섰다. 국회를 통과한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설비 감축과 사업 재편을 지원의 전제로 명시했다. 다만 실제 감축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과 현장 사이의 속도 차가 과제로 떠올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석유화학 지원법은 증설 중심의 과거 산업 정책과 결을 달리한다. 지원 대상은 생산 확대가 아니라 설비 감축과 구조 개편, 고부가 전환이다.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석유화학산업 종합 시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사업 재편과 고부가 전환 기업에 재정·금융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인허가 절차 통합과 환경 규제 특례를 통해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도 담겼다.
기업결합 심사 기간은 기존 최대 120일에서 90일로 단축됐다. 설비 가동률 조정, 생산량 감축, 출하 시기 조정, 원료·에너지 공동 구매, 공동 R&D 등 공동행위도 공정거래위원회 동의를 거쳐 허용된다. 이미 추진 중인 사업에도 소급 적용돼 올해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 감축 계획 270만~370만톤…단기 효과는 제한적
법 통과 이후 업계의 사업 재편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대산산단 내 NCC 설비 통합을 검토 중이며 여수산단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노후 NCC 설비 정리를 추진하고 있다. 여천NCC는 가동 중단 상태인 3공장을 포함한 추가 폐쇄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산단 역시 설비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이다.
업계가 제출한 감축 규모는 270만~370만톤으로, 국내 NCC 전체 생산능력(약 1470만톤)의 최대 25% 수준이다. 다만 정부 검토와 실사, 승인, 노사 협의, 환경 인허가 등을 거쳐 실제 설비 가동 중단까지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책금융기관과 채권단의 심사도 병행될 예정이다.
신용평가사들은 구조조정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2026년 석유화학 산업 전망을 ‘비우호적’으로 제시하며 공급과 수요의 구조적 불균형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출구 열렸지만 관건은 ‘속도’
업황 부진도 장기화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2023년 이후 3년 연속 적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으며 주요 기업의 순차입금/EBITDA 배율은 11배를 넘었다. 업계에서는 법의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단기적인 비용 부담 완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석유화학 지원법은 산업 구조조정의 틀을 마련했다. 감축과 전환을 전제로 한 ‘조건부 지원’이 제도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전기요금 감면이나 직접 보조금은 논의 과정에서 제외됐고, 사업 재편 계획을 제출한 기업에 한해 세제·금융·R&D 지원을 연계하는 방식이 채택돼 감축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시간과 추가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